[새벽메아리] 다시 美國을 생각한다

 

 

 

이번 미국 비행기 자살 테러를 TV로 지켜본 사람들은 항상 과장이 넘쳐나는 헐리웃 영화 속 픽션보다 더 충격적인 현실의 광경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위급한 순간에 테러범을 제압하는 주인공들이 나오는 영화와 달리 현실에선 영웅도 나오지 않는다. 한 편에선 영화가 테러범들을 가르쳤다는 소리가 나오지만 그것은 폭력 비디오가 폭력배들을 낳았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자본에 의한 세계화를 상징하는 뉴욕의 국제무역센터빌딩과 군사 심장부 워싱턴 국방성이 공격 당한 것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대한 정면 공격으로 보인다.

 

 

 

 

테러 직후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자유가 공격당했다. 위대한 미국을 위해 싸우자'면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밝은 자유와 기회의 빛’이어서 공격의 목표가 됐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아프칸에 대한 폭격을 개시하면서 테러에 대한 21세기 ‘새로운 전쟁’을 선포하였다.

 

 

 

 

전쟁은 갑자기 시작되지 않는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 패배로 인도차이나에서의 식민지배를 포기한 프랑스를 대신하여 그 자리를 물려받은 미국은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분할된 남베트남에서 ‘고딘디엠’을 내세워 친미반공정권을 세운다.

 

 

북베트남의 세력 확장에 시달려오던 미국은 1964년 미군함 매독스호가 북베트남으로부터 공격받은 ‘통킹만 사건’이후 들끓는 여론을 바탕으로 이듬해인 65년 북베트남에 대한 전면 폭격을 실시하고 본격적으로 베트남전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태평양전쟁때보다 더 많은 900만톤의 폭탄을 작은 나라 베트남에 퍼붓고도 가장 쓰라린 패배를 맛보게 된다.

 

 

 

 

20세기 미국의 가장 강력한 적이었던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몰락한 이후 미국은 새로운 전쟁에 직면하고 있다.

 

 

이번 전쟁은 미국이 자국 영토 밖에서 치러왔던 20세기 전쟁들과 달리 미본토 심장부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로 미국인이 겪는 공포는 역사상 처음 있는 것이다. 전쟁이 단지 ‘버튼’ 누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폭탄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아무 죄 없이 죽어가는 민간인이 얼마나 불쌍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미국은 보복 공격을 하기 전에 증오로 가득 찬 자살 테러가 왜 미국인에게 자행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고통은 과거 80년 동안 이슬람이 겪은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는 ‘라덴’의 주장과 쿠웨이트를 침공한 대가로 엄청난 보복 공격을 당해 수십만의 어린이들이 굶거나 병들어 죽어가는 ‘불량국가’ 이라크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이해하지 않는다면 대답은 항상 ‘전쟁’일 것이다

 

 

미국은 과거 베트남전에서 5만명의 미국 병사들을 잃고 나서야 그 전쟁에서 손을 뗐다. 이제 머나먼 이국 땅이 아닌 본토 심장부에서 수천 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된 이번 테러에 대한 대응에서 미국은 과거로부터 소중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테러는 단지 ‘공포’를 낳음으로써 상대방을 일시적으로 위축시킬 뿐이다. 공포는 신념에 입각한 진정한 용기에는 효과가 없다. 한국에서의 공포정치도 수많은 용기 앞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테러에 대항해 전쟁 수준의 보복을 가하는 것은 또 다른 참혹한 테러를 불러올 뿐, 테러의 원인 제거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세계 전략에 따른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과 아랍세계에 대한 적대 정책이 포기되지 않는 한 어떤 보복 폭격도 새로운 테러를 막지 못할 것이다.

 

 

미국 지도자들이 이것을 깨닫고 진정한 평화를 얻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 김성주 (시민행동21 뉴미디어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