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사회에서 학동들이 한문을 깨우치기 위해 가장 먼저 접했던 입문서가 천자문책이었다. 지금도 한문하면 첫 구절인‘하늘 천(天)’‘따 지(地)’를 떠올릴 정도로 천자문은 한문의 대명사격인 셈이다.
천자문은 중국 양(梁)나라때 주흥사(周興詞, 470∼521)라는 가난한 선비가 무제(武帝)의 명을 받아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언고시(四言古詩) 2백50구(句)모두 1천자로 구성되었기 때문에‘천자문(千字文)’이라 부른다.
주흥사가 2백50구의 운문을 하루만에 지으면서 얼마나 고심하였던지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고 하여 일명 백수문(白首文)이라는 별명도 있다. 천자문에는 단 한글자의 중복도 없고 깊은 뜻이 담겨 있었기에 한문 초학자를 위한 필수 교과서겸 습자교본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천자문책이 한국에 전래된 때는 확실하지 않으나 백제때 왕인(王仁)이 논어 10권과 함께 이 책을 일본에 전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에 비춰 볼때 이보다 전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옛날 양반집안에서는 천자문책을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직접 쓴 필사본으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지만 자식을 위해서 극성스런 방법을 쓰기도 했다.
전국 각지의 진사나 생원등 1천명을 찾아 다니며 천자문중 한 글자씩 받아 한권의 책으로 엮어 내기도 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지극한 정성이 전주에서 열리고 있는‘세계서예비엔날레’에서 선보여 관람객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끌고 있다고 한다. 국선및 시·도 서예전 초대작가등 전국의 명필 1천명이 각자 1자씩 쓴‘천인(千人)천자문’이 바로 그것이다.
전국의 서예가 1천명에게 출품을 의뢰하고 글자를 받아 16폭짜리 대형병풍을 만들기 까지 준비 작업에만 무려 2년이 걸렸다니 이만저만한 정성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글자 크기나 낙관 위치등을 통일시키기 위해 한 사람이 최고 다섯번까지 썼다니 관계자들이 겪었을 고충을 짐작할만 하다.
천인천색 다양한 서체를 갖고 있는 유명 서예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듯 싶다. 여기에 한국 서단의 하나 된 모습이 돋보이는 뜻있는 작품이라는데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