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書堂

 



예로부터 내려오는 글방인 서당(書堂)은 일종의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서당에 관한 초기 기록은 사기(史記)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나 삼국시대 고구려에 각 지방 평민층 자제들에게 경학, 문학, 무예등을 가르치던 경당( 堂)이라는 사학(私學)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것이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초기부터 각처에서 성행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고려시대 서당에 관한 기록으로는 인종 2년인 1124년 고려에 왔던 송나라 사신의 성장관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자세히 서술돼 있어 당시 서당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고려의 서당이 그대로 조선시대에 이어져 19세기 신교육이 실시될 때까지 가장 보편화된 민중교육기관으로 그 기능을 다했다.

 

이렇게 우리의 기초교육을 담당했던 서당은 구한말 서양 선교사들이 선교를 목적으로 민간교육에 나서면서 서서히 줄어들었다.

 

후 우리나라를 병합한 일제의 교육말살정책에 따라 서당은 급속히 사라졌다. 일제는 1981년 ‘서당규칙’을 발표하여 전국에 2만4천여개소에 달하던 서당의 말살을 시도했다.

 

당시 공립 보통학교가 전국적으로 4백62개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할때 기초교육을 담당했던 서당의 폐지는 일제의 민족교육 황폐화 책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서당은 근대식 학제가 시행된 후에도 보통교육에 보조기관으로 명맥이 유지되다가 산간벽지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급격히 쇠퇴했다.

 

엊그제 김제시 성덕면에서 국내 최대규모의 개인서당 낙성식이 열려 관심을 끌었다. ‘우리시대 마지막 훈장’으로 일컬어지는 화석 김수연(和石 金洙連·76)옹이 고향에 사재를 털어 마련한 ‘학성(學聖)강당’은 대지 8백여평에 건평 1백평 규모로 크고 작은 방 26개가 들어서 있어 1백여명의 수강생이 기거하면서 학문을 익힐 수 있다고 한다.

 

50년간 학문전수에 힘써온 김옹은 앞으로도 전국에서 찾아오는 후학들에게 옛 선현들의 가르침을 무료로 가르칠 계획이라니 지극한 정성이 수강생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극단적 물질만능주의가 판치는 우리 사회에서 왜곡되고 파괴된 가치규범을 바로 세우는 일이야 말로 당면한 과제의 하나이다. ‘학성강당’이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실천하는 메카가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