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한 長期囚의 경우



비전향 장기수 였던 고(故)진태윤씨. 1920년생이니까 지금까지 살아 있었으면 81세의 노인이다. 그의 파란만장 했을 삶의 역정이 사람들의 가슴을 친다.(20일자 본지 19면)

 

그는 지난 62년 3월 간첩으로 난파됐다가 체포돼 88년 12월 만기출소하기까지 26년여 동안을 복역한후 전주에 정착했다. 주위의 도움으로 공장에 취직하는 등 새인생을 시작했으나 97년 4월 패혈증으로 삶을 마감했다.

 

그에게는 북에 두고온 아내와 아들 하나가 있었다 한다. 생전에 그토록 그리워하던 가족을 위해 모은 것으로 보이는 2천만원이 예금 통장으로 사후에 발견됐다.

 

아픔의 세월, 가족 사랑의 눈물이 짙게 배어 있을 이 돈이 지금 주인을 못찾아 국고로 귀속될 처지라 한다. 성공회를 중심으로‘진씨 유산처리위원회’가 구성돼 북쪽에 있을 아들에게 이 돈을 전하려 해도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선 진씨 가족의 생사확인이 급한데 적십자사도 정해진 규정과 순서를 따를 수 밖에 없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지난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온 대립과 갈등대신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는 남북대화로 얻은 소득 중 이산가족의 상봉을 으뜸으로 꼽고 있다. 그동안 서울과 평양에서 두 차례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고 지난해에는 비전향 장기수들을 북으로 송환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중에는 남한 가족을 두고 북쪽을 찾아간 또다른 이산의 주인공들도 있다.

 

이념과 체제의 족쇄를 풀지못한 그들의 선택은‘인간자유’궁극의 목표가 무엇인지 숙제로 남겨 놓는다 치자. 하지만 가슴 매어지는 장기수 진씨의 사업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주민들은 80년대를 KBS가 주관한 이산가족 찾기 이벤트의 그 진한 감동을 잊지 않고 있다. 그 비극의 주인공들이 지금도 남과 북에서 눈물로 회한의 세월을 보내며 상봉의 그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드러난 이산가족 말고도 바로 진씨의 경우처럼 우리 사회에는 그늘속에 숨어사는 비극의 주인공들이 또 있다. 인도주의를 표방하며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온게 이산가족 상봉이다. 이 결실을 그들에게도 나누어 줄 획기적인 전기는 언제쯤 이루어 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