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등학교 다니는 딸 아이가 자주 부르는 ‘디지몬 어드벤처’라는 일본 애니메이션 노래를 듣다 보면 ‘환상의 디지털세상’ 어쩌고 하는 부분이 나온다. 아이들 노랫말에 ‘디지털 세상’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게 신기해서 무슨 뜻인지 물어보니 고개를 가로 젓는다.
하기야 디지털의 뜻을 알 리도 없겠지만 특별히 이해해야 할 어려울 말도 아닐 것이다. 이 세대들은 디지털 시대를 이미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많은 어른들이 디지털 시대에 대한 부적응에 따라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에 시달리고 있겠지만.
디지털은 모든 현상을 0과 1의 숫자 조합으로 표현한다. 바늘 달린 시계가 아날로그 방식이라면 숫자로 표시되는 전자시계는 디지털 방식이다.
바늘 시계는 연속적인 초침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표현하므로 시간을 물으면 ‘몇 시쯤이다’라고 답하겠지만 디지털시계는 ‘몇 시 몇 분’이라고 정확하게 답하게 된다. 이처럼 아날로그가 ‘쯤’, ‘가량’ 등 근사치를 표현하지만 디지털은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
이런 디지털의 특성 때문에 우리는 애매모호한 것들을 보다 분명하게 구분 짓게 된다. 요즘이야 바늘이 돌아가면서 소리를 내는 LP음반을 듣는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약간의 잡음도 포함하여 적당히 자연적인 소리를 만들어내는 LP에 비해 CD나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되는 MP3 음악은 어떤 이질적인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담고자 하는 소리만 실리게 된다.
TV에도 고화질 쌍방향 디지털TV가 등장하여 바보상자의 오명을 벗으려 하고 촬영-현상-인화-스캐닝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필름 카메라 대신 한 번의 촬영으로 원하는 사진을 얻어내는 디지털카메라가 사진 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받게 된 지 오래다.
디지털 정보기기의 등장으로 과거에 거대한 조직의 거대 시스템이 담당했던 업무를 한 사람이 개인 PC를 갖고도 거뜬히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을 만들어낸다거나 비디오를 편집하는 일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이런 디지털 세상의 변화의 중심에는 항상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이 서있다. 정보기술과 통신기술의 발전이야말로 새로운 기술혁명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가 깊어갈수록 과거에 대한 향수도 깊어지고 그에 따라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름도 깊어진다. 얼마 전 도장 새기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 전자결재와 싸인문화의 유행으로 도장 새길 일감이 적어진 데 실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실이 그랬을지는 모르지만 디지털 시대의 변화에 따라 몰락하는 분야가 분명 있으리라.
한 때 이상주의자들이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를 갈망했듯 사람들은 ‘인간의 얼굴을 가진 디지털 시대’를 원하고 있는지 모른다.
디지털 시대가 사람들에게 좀 더 빠르게 판단하고, 정확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함에 따라 개인의 지적 능력의 차이에 따른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하며 양극화가 심화된다.
사람들은 디지털혁명이 가져다 주는 일상생활의 편리함과 시간, 비용의 절감 혜택을 누리는 한편 ‘빛의 속도’로 사고하고 행동할 것을 끊임없이 강요당한다. 이래서 우리는 ‘편리하지만 편하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원고지에 직접 손으로 글을 써야만 좋은 글이 생각난다는 작가도 두 손가락 세워 두드려야 하는 자판에 항복한지 오래고, 잡음이 있어 오히려 좋다는 LP음반 애호가도 보관이 편리하고 깨끗한 음질을 유지하는 CD에 길들여진 지 오래다.
과거로 되돌아가기는 커녕,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조차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의 ‘환상적’인 디지털 세상의 찬미에 주눅들어야 하는 것을…나도 가끔 탈출을 꿈꾸지만 겨우 잠시 도망갔다 되돌아올 뿐이다.
/ 김성주 (시민행동21 뉴미디어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