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離婚의 일상화

 



아프리카 해안에 사는 어느 종족의 부인들은 남편과 이혼을 하고 싶을 때 남편에게 커다란 나무를 자를 것을 요구하면 된다. 이 나무 줄기는 매우 단단하여 보통 톱이나 도끼로 베기가 쉽지 않다. 남자가 나무를 자르지 못했을 때 그것은 이혼의 훌륭한 사유가 된다.

 

요즘‘내 인생을 찾겠다’며 별 특별한 사유 없이 이혼을 요구하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가부장 문화에 젖어 있는 중년 남편들이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전국 법원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 10년 동안 여자가 제기한 이혼재판 건수가 전체의 58.2%로 남자가 제기한 건수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점점 심해져 2000년에는 전체 62%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혼을 “진보된 문명사회의 필수품”으로 여기는 몽테스키외의 지적을 밀자면 우리도 급격하게 진보된 문명사회로 진입해 들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달가워하거나 체념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남편들의 구태의연한 태도라 할 수 있다. 여성들의‘반란’이 시작된 지가 이미 오래 되었는데도 자신에게 객관적인 귀책(歸責) 사유가 없다며 억울함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일부종사를 꿈꾼다거나 자녀를 위하여 가부장적 권위를 참아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으며 허울좋은 결혼생활보다‘속편한’독립을 선호하는 경향이 꾸준히 늘고 있는데도 남성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가장으로서 한 살림을 꾸리기 위해 자신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만 챙길 뿐 남편을 위해, 자식을 위해 헌신하다 어느 날 문득‘허무함’을 호소하고 나오는 부인의 입장은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혼이 농사일 수 없다. 아니 자녀문제 등 많은 사회적 부작용을 수반하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의미를 느낄 수 없는 결혼생활을 강요할 수는 없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최종처방’은 하나뿐이다. “진심으로 이혼이 두렵고 가족과 헤어지기 싫다면 남성들이 스스로 달라질 수밖에”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