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상담] 옛날 살림집의 채광창

 

 



◆문=옛날 살림집의 실내는 대체로 어두웠다고 생각되는데, 혹시 지금과 같이 유리가 달린 채광창이 없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답=건축은 벽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덮는 일이다. 비바람을 막고 맹수의 피해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것은 일차적으로 외부환경조건과의 차단과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벽과 지붕에 의해서 마치 어머니 뱃속과 같이 캄캄하게 만들어진 공간에 우리 인간은 빛을 받아들이기 의해서 처음으로 건축물에 창과 문을 설치하게 되었다.

 

 

그런데 빛을 받아들이고 기류를 조절하기 위해서 등장한 이 창과 문도 관심 없이 스쳐보면 다 똑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꽤나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보통 띠살이나 아(亞)자살 또는 완자살로 울거미를 만들고 그 위에 창호지를 바른 문을 띠살문이나 아자살문 그리고 완자살문이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통상적인 문(門) 이외에도 채광과 통풍전용의 창이 따로 있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 작은 바지주머니를 봉창이라고 부르는데, 이 봉창(封窓)과 더불어 교창(交窓)이나 눈꼽재기창, 넉살무늬창 그리고 바라지창 등이 모두 우리 살림집에서 빛을 받아들이고 통풍을 하기 위해서 설치한 일종의 광창(光窓)이었다.

 

 

또 ‘불밝힘’이라는 뜻을 가진 불발기창은 안팎을 싸서 바르는 맹장지형 사분합문의 중간쯤에 빗살이나 亞자살 그리고 卍자살를 무늬로 만들어 채광을 돕는 창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창덕궁 연경당의 대청마루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사분합 문짝에 달린 불발기창과 경북 성주군 한계마을 월곡댁(月谷宅)의 불발기창 그리고 충남 대덕군 회덕면 동춘당(同春堂)의 불발기창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형태의 문살을 가진 광창(光窓)이라고 생각된다.

 

/ 최상철 (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