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전염병의 역사라고도 할만큼 인류는 수많은 전염병에 시달려왔다. 바이러스와 세균으로 인한 전염병이 창궐할 때마다 집단공포 속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뤘다.
그러나 그 많은 전염병중에서 의학자들이 퇴치에 성공한 병은 천연두 하나 뿐이다. 마마, 손님, 두창으로도 불린 천연두는 전염성이 높고 치사율이 30% 이상에 치료후에도 얼굴을 온통 곰보로 만드는 무서운 질병이다.
천연두는 고대 로마시대에 군대내에 창궐하여 천하무적 로마군을 궤멸시켰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첫 발을 내딛으면서 이 무서운 병도 함께 상륙해 원주민 1백만명 이상이 사망하기도 했다.
잉카제국과 아즈테크 문명의 멸망을 앞당긴 것도 유럽인들이 묻혀간 천연두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20세기 들어서도 지난 1967년 전세계에서 1천만명이 발병하여 2백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중인 1951년 이 병에 걸려 1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천연두는 지금의 에이즈처럼 공포의 대상이었다.
천연두 치료및 예방에 전기를 마련한 사람은 18세기말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였다. 제너는 소의젖을 짜면서 소의 질병인 우두에 걸린 여자들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 점에 착안, 우두에 걸린 환자의 고름을 한 소년에게 주사하여 면역을 얻게하는데 성공하였다. 요즘 백신 예방법의 효시인 셈이다.
제너의 종두법은 19세기말 일본에 건너간 지석영(池錫永)이 우리나라에 들여왔다. 한국전쟁중 창궐했던 천연두는 그후 급속히 소멸, 1966년 3명이 걸린 것을 끝으로 사라졌다. 세계에서도 1977년 소말리아 환자가 마지막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 ‘천연두 박멸’을 선언했고, 우리나라도 그 무렵부터 백신접종을 중단했다. 우리 국회는 1993년 천연두를 제1종 법정전염병에서 제외시킴으로써 법적 ‘사망 신고’를 내렸다.
그런데 엊그제 보건복지부가 ‘사망 선고’9년만에 천연두를 4군전염병에 다시 포함시키기 위해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개정령을 입법예고했다. 지난해 미국의 9·11테러사태 이후 월드컵등 국제행사에서 생물테러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테러가 전염병의 역사까지 새로 쓰게하지 않을 지 두려운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