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하는 A씨는 얼마전 기자를 찾아와 하소연을 했다. 민주당이 도지사후보를 뽑으면서 도민경선제를 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며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소개해 주었다.
그는 지난주 특정 도지사후보를 지지하는 어느 자치단체 비서실장이 불러 찾아갔다. 선거캠프에서 일하다 별정직으로 들어 온 그 비서실장은 단체장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그런 사람인데 도지사후보 경선에 참여할 공모당원 1백명을 알선해 달라며 신청서 1백장을 건네주었다.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 신청서류인지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었다.
A씨는 그 자치단체가 발주한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거절할 수도 없었다. 신청서류를 받아오긴 했지만 숫자도 많거니와 자발적 참여자도 없어 난감했다. 할 수 없이 그는 한사람당 몇만원씩을 주고 아파트에 사는 주민 50명을 ‘사’ 신청서류를 나누어 주고 접수토록 했다고 한다. 나머지 50장은 역부족이었다.
조그마한 사업을 하는 그로서는 자신에게까지 이런 주문이 올 줄은 미처 몰랐다며 “이런 케이스가 어디 한둘이겠느냐” “‘눈감고 아옹’하는 이런 식의 도민경선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흰눈을 들이댔다.
최근 민주당이 지구당별로 도민선거인단 참여신청을 마감한 결과 2,031명 모집에 43,971명이 신청해 2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한 국민은 190만명에 이른다.
도민경선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드러내는 수치라고 착각할 법도 하겠으나 신청자들은 대부분 경선후보측이 동원한 세 몰이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생업 때문에 바쁘기 짝이 없고 정치판도 맘에 안드는 마당에 손수 신청서류를 작성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다.
신청자 한명이라도 ‘우리 측 사람’을 더 많이 넣어 선거인단으로 추첨될 확률을 높이려는 욕심은 이해할만 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동원경쟁이 불붙기 마련이고 경쟁이 과열되다 보면 금품과 향응제공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금품을 제공한 대가의 부메랑은 ‘유착’으로 결과될 것이고 ‘유착’은 정상적인 시장기능을 왜곡시킬 뿐 아니라 ‘부실’을 잉태할 것이 뻔하다는 점에서 화근의 제일원인이되는 셈이다.
자치단체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도지사는 물론 시장이나 군수선거때 후보들을 돕지 않으면 나중에 단돈 몇천만원짜리 사업일망정 ‘국물도 없다’는 게 정설이다.
이런 역학관계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업가들은 기를 쓰고 인맥을 대거나 돈을 풀고 있다. 말이 ‘지원’이고 ‘도움’이지 후일을 기약한 보험성격의 보증수표라고 할 수 있다.
며칠 지나면 도지사경선 선거인단 명단이 드러나 또 한바탕 금품공세가 이어질 것이다. 시장 군수 도의원 경선도 마찬가지이다. 당내 경선에서 마저 먹이사슬의 고리가 형성되고 돈으로 사람을 사는 판국이니 도민경선은 ‘도민(盜民)경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권력은 돈을 찾고 돈은 권력을 찾는 속성이 있다. 경선 마당에서의 이같은 부패사슬 고리를 깨기 위해서는 사전에 무작위로 선거인단을 추첨해서 확정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후보들은 말한다. 이번 경선 만큼은 돈 안쓰고 깨끗이 치르겠다고.과연 그럴까. 이 말이 메아리져 돌아올 때는 ‘웃기네∼’일 것이다.
/ 이경재 (본보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