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태극기 응원

 

 

 

우리의 태극기가 세상에 첫 모습을 드러낸것은 1882년 8월 일본 고베(神戶)에서다. 당시 특명전권대사겸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한 박영효(朴泳孝) 일행이 니시무라야(西材 ) 숙소에 지금의 태극4괘가 그려진 기(旗)를 게양하면서다.

 

물론 당시엔 국기의 개념이 정립되기도 전이었으므로 단지 조선을 대표하는 상징으로서 일본행 뱃속에서 급조된 일종의 깃발이었을 뿐이다.

 

그랬던 태극기가 정식으로 국기가 된것을 정부수립후인 1949년 1월 당시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의 특명에 의해서다. 이대통령은 국민들의 국가관과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는‘나라의 상징’인 국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고 그 결과 국기제작법과 게양법등 관련 규정이 마련되면서 태극기가 국기로 정식 탄생한 것이다.

 

이때부터 태극기는 각종 의전행사나 국경일에 반드시 게양되고 국민들의 자존심을 일깨우는 공경의 대상으로 자리잡아 왔다.

 

그토록 신성과 권위의 상징으로 외경시 되어온 태극기가 이젠 월드컵을 계기로 한결 친숙한 시민들의 벗으로 다가서고 있다. 우리 팀의 경기가 있을때마다 관중석과 거리에 태극 물결이 휘몰아 치고있고 택시나 학생들의 책가방에까지 태극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응원단들에게도 태극기는 다양한 소도구로 인기를 끌고 있다. 얼굴에 태극모양을 새기는것은 보통이고 머리에 쓰는 두건, 스카프, 망토가 등장하는가 하면 한 백화점에서는 국기를 본 딴 수영복 패션쇼까지 열릴 정도다.

 

태극기를 비에 젖도록 방치했다해서 국기모독죄로 입건되는 일까지 있었던데 비하면 국기 사랑의 세대변화에 금석지감(今昔之感)을 느끼게 하는 요즘이다.

 

이런 행태에 대해 일부에서는 국기의 권위를 무시하는 행위라는 우려가 없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의 국기 공경은 사실 지나친 엄숙주의라는 비판을 받아온것도 사실이다. 외국에서는 국기를 일상의 도구화라고 상품화하여 관광객들의 시선을 끄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비하면 우리가 오히려 늦은감이 없지 않았다고 볼수도 있다.

 

오늘 드디어 우리 축구가 이탈리아와 8강진출을 놓고 한 판 승부를 겨룬다. 또한번 태극물결이 전국을 수놓을 판이다. 전국민의 염원을 모아 태극기가 이탈리아의 3색 국기를 물리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