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지방선거 다음날 A군에서 있었던 일.
당선자 선거캠프에 몸담았던 어느 전직 공무원은 군청에 들어와 이것 저것 파악하고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 폼이나 말투가 어찌나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지 공무원들은 마치 점령군 같았다고 말했다. 혁명에 성공해서 권력을 거머쥔 점령군으로 비유하니, 떵떵거리고 다닌 그 꼬락서니가 어떻게 비쳐졌을지 두눈으로 확인을 하지 않아도 훤히 알만하다.
다른 사례. 민주당 경선에서부터 후보를 도왔던 한 업자는 공공연히 “손 볼 놈이 있다”며 해당 공무원을 겨냥하는 말을 하고 돌아다녔다. 수의계약 건 청탁을 들어주지 않자 마치 자신이 인사권을 쥔 것처럼 막말을 해대고 있다.
선거 때 얼마나 많은 돈을 뿌리며 당선자를 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뿌린 만큼 거두려는 것처럼 그의 머리속에는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선자측 점령군 행세 눈살
어느 자치단체장 선거 후보 캠프.
6.13지방선거 개표가 진행되던 밤중에 공무원 몇몇이 나타났다. 어느 누가 보아도 현직 단체장이 당선될 걸로 여론이 형성돼 있었지만 막상 선거 뚜껑을 열어보니 정 반대의 결과가 나온 지역이다. 예상을 깨고 뒤집히는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자 공무원들은 밤중에 이 캠프를 찾아 발 빠르게 눈도장을 찍었다.
6.13지방선거 뒤 끝의 이런 사례는 어느 자치단체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공통된 현상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권력이동’에 따른 액션들이다. 하지만 너무나 속 보이고 해서는 안될 행동들이다. 특히 공무원이 밤중에 선거캠프를 찾았다는 것은 스스로 정치 공무원임을 드러내는 노골적 정치행위이다. 그 근저에는 권력을 행사하거나 권력에 줄대기 위한 과욕이 도사리고 있다.
선거는 흔히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실은 권력을 쟁취하는 수단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선거의 핵심은 권력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용한 칼도 잘못 쓰면 흉기가 되듯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 쟁취한 권력 역시 남용하거나 주민 뜻에 반하게 사용하면 결국 자신을 베는 흉기로 둔갑하게 마련이다.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지족(知足)의 지혜가 근본이다.
석가가 말하는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여섯가지 해독 가운데에도 탐욕이 들어있고 중세 가톨릭이 얘기하는 일곱개의 대죄(大罪)중에도 과욕이 들어있다.
점령군 행세를 한다거나 보복성 인사를 하는 행위, 단체장 쪽에 줄대기 현상들이 모두 지족의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오는 이기주의적 행위다. 바닷물로 갈증을 달래려는 사람처럼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에 사로잡히는 게 욕심인데 새 단체장들이 마음속에 집어넣고 두고두고 음미해야 할 금과옥조다.
권력은 분수 벗어나면 흉기
오는 7월1일 취임을 앞두고 행정업무 인수인계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인사정책과 예산정책도 검토되고 있다. 선거는 권력이고 권력을 쟁취한 마당에 전리품을 챙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도와 분수, 지족의 카테고리 안에서 모든 일이 이뤄져야지 상궤를 벗어나면 권력의 남용으로 귀착될 것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단체장에게 돌아가고 민의(民意)는 선거 때 정확히 이를 반영해 온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관찰하고 있지 않은가.
주민의 심판이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사실을 새 단체장들은 깨달아야 한다. 좀더 겸손하고 지혜로운 출발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이경재(본보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