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親日派청산

 

 

지난 13일 서울 흥사단 강당에서 열린 2002년 학술단체협의회에서는 ‘친일파문제’를 주제로 논의가 이루어졌다. 상지대 강만길 총장은 해방 후 역사학계가 친일파 청산에 적극적이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역사학자 자신들이 일제치하에서 교수를 하면서 해방 후에도 교수로 역사학을 주도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에게서 배운 1세대 역사학자들도 친일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하였고, 2세대 역사학자가 나타나고 나서야 친일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친일청산을 반대하는 다음과 같은 궤변이 해방 직후부터 생겨났다고 밝히고 있다. 과거는 흘러갔으니 잊어버리자는 주장, 당사자가 죽었는 데 웬 친일파청산이냐는 주장, 일제 하에서 친일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민족 모두가 공범이란 주장, 일제의 강력한 권력에 의해 친일했기 때문에 어떻게 개인이 그것을 거부할 수 있겠느냐는 중장,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에 따르다 보니 결과적으로 친일한 것이어서 개인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주장 등등.

 

또한 민족의 선각자로서 근대화를 위해 친일한 것이라는 주장, 한 때 친일을 했으나 해방 후 민족에 끼친 공로가 많으니 후자를 더 중요시해야 한다는 주장, 이제 와서 친일파를 따지는 것은 후손에게 불이익을 주는 연좌제라는 주장, 친일청산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력만 낭비하는 불필요한 일이라는 주장, 친일파청산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빨갱이라는 주장도 있다.

 

해방 초기 정치계, 군대, 경찰, 법조뿐만 아니라, 학문, 문학, 영화, 연극 등의 영역에서도 친일파청산은 고사하고 반성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역대정부들은 반일감정을 고취시켰지만 친일파를 청산하지는 않았다. 친일파가 계속 주도권을 장악하여 여러 가지 궤변으로 친일파에 대한 청산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대부분의 친일파들이 죽어서 그들에게 친일의 죄를 물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일파의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고 공개하여야 한다. 일제가 저지른 식민주의와 권위주의에의 동조를 반성하고, 권위주의적 권력에 의해 침해당하는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또한 앞으로 권위주의에의 동조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결국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과거반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