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창] 변해버린 여성운동

 

 

여성운동이 변하고 있다. 아니 변해버렸다. 여성운동이 놓여 있는 여건의 변화에 따라, 또한 여성활동가들의 면면이 바뀜에 따라 여성운동 또한 변화를 거듭해왔다.

 

우리의 경우 김영삼 정부 집권 이후, 더 나아가 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여성운동이 좋은 시절을 만났다. 여성운동 단체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늘어났고 보다 지속적이고 안정된 활동을 펼쳐갈 최소한의 기반이 마련됐다. 각종 여성의 권리를 보장해 줄 법들이 마련되고 성폭력 가정폭력 등을 호소할 기관들이 대폭 증설됐다.

 

그 뿐인가. 우리 역사상 최초로 여성부가 설립됐고 적지 않은 수의 여성활동가들이 주요한 공직에 진출해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관료가 됐다. 물론 오늘의 이러한 결과들이 그동안 여성운동과 활동가들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실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본질은 과거보다 희미해지고

 

과거의 활동가들은 쥐꼬리만한 활동비에도 여성운동의 이념 때문에 여성운동에 헌신했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재정적인 면에서나 인력면에서 조금은 편해지고 넉넉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여성운동의 본질이 제대로 이어지고 있는가는 의문이 남는다. 운동성 있는 사업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프로젝트를 따기 위한 일회적이고도 전시적인 행사를 치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운동권으로서 가져야 할 비판의 기능은 제도권과의 긴밀한 관계로 인해 약화돼 버렸다. 여성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찾아 바쁘게 뛰어야 할 활동가들이 재정보고서 작성이 주 업무가 돼버리기도 한다. 활동가들은 활동가들대로 힘들고 지치고 피곤하다고 호소한다.

 

힘 주고 기 살리는 운동 아쉬워

 

여성들에게 힘을 주고 기를 살려주는 운동판의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다. 모든 사회제도와 실천들은 비판적인 성찰을 통해 변화 발전해왔다. 여성운동도 예외가 아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지원 한계를 미리 인지할 필요가 있다. 정부 재정 지원이 여성운동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이미 많은 연구들이 이뤄졌다. 즉, 운동성이나 급진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또한 조직의 측면에서는 위계화 관료화되는 경향이 높으며 주로 상담이나 쉼터와 같은 서비스에 재정 지원이 집중된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대학의 정경자씨는 호주와 한국의 두 여성운동 조직을 통해 비교연구한 논문을 통해 70∼80년대 호주의 가장 급진적인 여성단체가 스러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99%의 재정을 정부에 의존해온 이 단체는 활동의 증가로 예산증가가 불가피해 거리시위 탄원서 로비활동을 통해 재정증액을 요구해왔으나 관련 정부단체에서는 두명의 감사관을 파견해 그동안의 활동을 면밀히 검토했고 증액요구는 거절됐다.

 

결국 24시간 상담업무를 유지하기 위해 유일한 한 명의 운동부 간사가 해고됐고, 이 곳은 이제 그저 여성주의 상담기관으로서 그 명맥을 유지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이 변화된 시대에 여성운동의 급진성을 담보하기 위해 예리한 칼날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지금 여성들이 무엇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지에 관심을 늘 기울여야 한다.

 

그 여성들 옆에 서서 문제의 해결을 도와주고 힘을 줄 때 여성들은 여성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한다. 이런 여성대중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이 운동성의 뿌리임을 기억할 일이다.

 

/허명숙(특집여성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