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수 총리서리가 무주까지 시찰 나오는 걸 보니 태풍 ‘루사’가 할퀸 상처가 깊긴 깊은 모양이다. 피해현장이 대부분 복구단계에 들어섰다고 언론은 보도하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황토색 속살을 드러낸 산허리, 동강난 다리,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집채 부스러기들이 아직도 그대로 내동댕이쳐 있다. 한 톨의 쌀이 생산되기 까지는 여든 여덟번이나 손길이 닿아야 한다는데 수확을 앞둔 벼들이 푹삭 고꾸라져 있다.
얼마전 텔레비전에서는 실종된 남편을 찾을 길이 없어 애태우는 어느 아줌마의 모습이 나왔다. 죽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는데 열흘이 지난 이제는 시신이라도 찾아 편히 쉴 수 있도록 하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추석이 낼 모레인데 집도 날아가고 남편도 잃었다며 눈물도 말랐는지 쉰 목소리만 흐느꼈다.
현장방문 이중성인가 철면피인가
지난 열흘간 태풍 피해로 호들갑이 요란하더니 뭇 사람들의 현장 방문길이 이어졌다. 곤색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수해현장을 방문한 지방의원들의 모습이 신문에 실렸다. 누굴 약 올리려는 심산인지 아니면 상식의 보편성에 미달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현장 방문 뒤 상경길에 오른 중앙부처의 어느 지체 높은 인사의 시커먼 에쿠스 승용차 트렁크에는 인삼선물이 실리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특산물을 중앙에 상납하던 조선시대의 아부관행이 수재 틈바구니에서도 삐져 나왔다.
동료들과 함께 피해현장을 방문했던 어느 지방의원은 바쁜 일이 있다며 슬그머니 빠져나와 골프장으로 간 경우도 있었다. 초췌한 수재민의 위로 끝에 골프…. 그날 볼이 잘 맞았는지 궁금하다.
유형의 재물은 물론이고 마음까지도 사정없이 할퀴어진 수재민들. 그들의 깊게 패인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 위해 현장을 찾아 나선 인간들의 다양한 군상(群像)이 무척 흥미롭다.
그들은 그들의 이름으로 수재민들에게 격려금을 내놓았을 터인데 그 돈은 우리 모두가 낸 세금의 다른 이름이다. 곤색 정장차림에 우리가 낸 세금으로 격려금을 만들어 근엄하게 생색내는 장면을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절로 나온다.
전북지역의 피해는 정부 합동조사결과 전북도가 조사한 3천5백억 보다 7백억이 줄어든 2천8백67억원으로 최종 집계됐다. 피해 산정은 일정한 기준에 따라 하는데 그 내력을 들춰보면 수재민들을 또한번 서럽게 만든다.
이를테면 닭 한마리(중간)는 6백70원을 쳐 주는데 이중 50%를 정부가 지원해 주고 있다. 절반이나마 지원 받는 입장에서는 감지덕지할 일이지만 세상에 6백70원짜리 닭이 어디 있는가.
쌀 됫박 에누리 깎아내듯 싯가를 사정없이 줄인 것은 보상을 적게 해 주기 위한 속셈인지, 아니면 피해액이 많이 나오면 후진국 측에 끼일까 봐 그러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피해 더 많아야 혜택 받는다 굽쇼?
이번에는 피해지역 모두가 지정돼 다행이지만, 특별재해지역 지정도 웃기는 일중의 하나다. 재해를 당한 주민 들은 피해가 많은 지역에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관계없이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고 있을 터이다. 그런데도 굳이 특별이라는 말까지 덧붙여 어느 곳은 혜택받게 하고 다른 곳은 그렇지 못하게 하니 이게 화합을 주창하는 정부가 할 일인가.
걸핏하면 법과 잣대를 들이대던 정부가 특별재해지역을 지정하는 기준도 없이 어디는 특별재해지역이고 어느 곳은 그냥 재해지역이라고 판정하고 있는 꼴이 우습다. 재산 잃고 남편 잃은 사람이 정부 혜택 받을라 치면 그 지역이 더 많은 피해가 나야 한다 굽쇼 ?
/이경재(본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