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흉년이다. 도에 의하면 올해 쌀 생산량은 지난해 보다 10%가량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불과 몇 년까지만해도 다들 쌀이 모자라는 것을 걱정했다. 이제 오히려 쌀이 남아 도는 것을 걱정해야 하니 정말 격세지감이다. 점심시간때마다 도시락혼식검사를 받았던 세대는 더더욱 그렇다.
분명 쌀이 남는다는 것은 쌀이 없다는 것보다는 나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농민들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 특히 일조량 부족과 태풍피해로 쌀품질이 예년같지 않아 농민의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여기에다 2005년이후 쌀이 개방될 것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제값도 못받는 전북쌀
전북쌀이 제값도 못받는 것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전북쌀은 농협 하나로 클럽 양재점에서 항상 가장 낮은 가격이다. 서울의 유명백화점에서도 이름값을 한다는 전북쌀이 경기쌀에 비해 저가로 팔린다. 일산같은 신도시 대형할인점에는 아예 전북쌀은 한 종류도 진열조차 하지 않는 실정이다.
이들 두고 다들 전북쌀이 푸대접받고 있다고 말한다. 유통과정에서 질좋은 쌀은 경기미로 바뀌고 질 나쁜 쌀은 호남미로 유통되었기 때문에 이미지가 나빠졌다고 말한다. 전라도라는 그릇된 역사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있다.
전북에서는 10여년전부터 전북쌀 제값받기운동을 시작하였다. 전북은 'EQ-2000' (올해 부터는 EQ-온고을)쌀이라는 도브랜드를 만들어 TV에서 홍보하기도 하고 서울 양재동 하나로클럽, 전주로 오는 귀성객을 대상으로 판매행사를 하기도 하였다.
시군 자치단체 ,미곡종합처리장 등에서도 자체브랜드를 개발하여 전북 쌀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노력을 해왔다. '고창황토쌀' '장수메뚜기쌀' '지평선쌀' '동학농민쌀' '새만금쌀' '남원춘향골쌀' … …. 개인이 만든 것까지 합쳐서 무려 전북쌀 브랜드는 200개정도. 각 시군으로 따지면 평균 14개정도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북쌀 푸대접은 갈수록 심해져 가고 있다. 다른 지역 쌀과의 가격격차는 커져만 가고 있다. 최고의 품질만이 살아남는다'는 법칙이 쌀 시장에도 예외없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품질인증을 받아 최고가를 누리던 부안의 개화미가 품질관리의 소홀로 중저가로 된 것은 소비자의 기호를 충족시킬수 있는 냉엄한 경제원리를 거슬렸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북쌀문제는 쌀이 가진 본래적 가치에 대한 제값을 못하여 생기는 문제인 것이다.
현재 농협유통 하나로 클럽 양재점에서 가장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는 것은 전남 해남의 옥천농협에서 생산하는 쌀(유기재배가 아닌 일반재배쌀)이다. 본래 적자이던 옥천농협은 주도면밀한 마케팅전략을 세워 이천쌀보다 더 좋은 가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경기미가 아닌 호남미이다는 사실이 얼마나 아이러니컬한가. 바로 쌀문제는 호남미가 아니라 전북에 사는 사람의 문제라는 이야기이다.
나는 순창군 동계농협에서 이같은 희망을 본다. 동계농협에서는 매실을 입힌 '초롱매실미'를 개발하고 철저한 품질관리를 통해 시장에 내놓는다. 일반쌀보다 반 값정도 비싸지만 작년 250억원의 쌀을 팔았다. 산지간의 경쟁에서 논보다도 산이 많은 지역쌀이 이긴 것이다.
팔 물건에서 팔 수 있는 상품으로
전북에서 쌀의 중요성은 남다르다. 생산량으로는 전남, 충남에 이어 세 번째이지만 농가호당 소득의 60%이상이 쌀에서 나올 정도로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가장 크다. 10%만 전북쌀 값을 높게 받을 수 있다면 전북에서는 1천억 정도를 더 벌어 드릴 수 있다.
이제 쌀은 시장개방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최근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쌀시장을 개방(관세화)할 경우, 5년후 쌀소득이 절반이하로 줄어 들 것이라고 한다. 쌀 수매도 어렵고, WTO에서 허용하는 최고관세를 매긴다해도 가격면에서 경쟁하기 힘들다.
이 경쟁에서 이기는 유일한 길은 쌀이라는 본래의 가치에다 소비자의 신뢰를 넣어 팔 수 있는 상품을 만드는 길뿐이다.
/소순열(전북대 농업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