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메아리] 이제는 가계부실인가

 

 

 

지금으로부터 5년전 우리나라는 사상 초유의 외환위기를 맞아 IMF관리체제로 들어갔다.

 

 

환율과 금리는 하루가 다르게 폭등하고 과도한 부채에 시달리던 기업들이 줄줄이 부도를 맞았으며 그로 인해 많은 근로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는 그야말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암울하고 참담한 상황이었다.

 

 

일반 국민들은 왜 그러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도 또한 그러한 상황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채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지내야 했다.

 

 

기업부실이 초래한 외환위기

 

 

잘 알다시피 97년 외환위기의 그 근본적인 원인은 기업부실에 있었다. 대마불사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대기업을 중심으로 너나 없이 기업확장에 일로 매진하였다.

 

 

자연히 그에 필요한 자금을 은행으로부터 차입할 수밖에 없었으며, 은행은 국내 자본으로는 한계가 있어 외채를 그것도 불안한 단기외채를 차입하여 기업에 대출하였다.

 

 

기업들은 실속 없는 외형경쟁에만 치중한 나머지 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되고 이것이 누적되어 차입금 상환에 대한 의심을 받게 되었다. 금융에 관한 한 우리보다 더 철저하고 합리적인 외국금융기관이 이러한 상황을 가만히 보고 있을 리 만무했다.

 

 

즉각적으로 단기외채를 회수하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떨어져 외환위기 초래되었던 것이다. 적어도 이때는 일반국민 즉 가계는 억울한 피해자였다. 기업부실이 그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대선과 맞물린 상황이 비슷한 5년후 지금은 어떠한가. 이제는 반대로 가계부실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6월 말 현재 가계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70% 수준인 370조∼380조원이며 연말까지는 꾸준히 증가하여 국내총생산의 73% 수준인 400조원을 훨씬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하는데 이는 소비천국인 미국과 동일한 수준이다. 가계대출 증가는 최근 몇 년 동안 전례 없는 급격한 속도로 진행되었다.

 

 

가계대출 증가가 반드시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최근 몇 년 세계경제 침체에 빠져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독 우리 경제만 그럭저럭 괜찮았던 데에는 가계대출의 증가가 한 몫을 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과도한 가계대출로 인한 상환능력 상실이 가계부실로 이어져 또다시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97년과 마찬가지로 금융기관은 국내 저축으로는 부족한 대출자금을 단기외채를 차입하여 공급하고 있다.

 

 

가계부실로 인한 금융위기가 감지되는 순간 외국금융기관은 가차없이 외채상환을 요구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것이 바로 제2의 외환위기가 되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말해서 기업은 생산물의 공급자이자 생산요소의 수요자이며 가계는 생산물의 수요자이자 생산요소의 공급자이다. 가계는 생산요소 즉 노동과 자본을 기업에 공급하여 임금, 이자, 이윤 등의 소득을 얻어 생산물을 소비하고 남은 일부는 저축하여 기업에 자본을 공급해야 정상적이다.

 

 

그런데 생산요소인 자본이 생산요소의 수요자인 기업으로 들어가지 않고 생산요소의 공급원인 가계로 역류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기업의 부채비율의 감소와 정부의 저금리정책에도 원인이 있다.

 

 

빚 내서 소 잡아 먹는 우리

 

 

가계는 자신이 벌이들인 소득의 한도 내에서 소비를 하고 그 나머지를 저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한 가계가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대출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소득이상으로 소비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가계대출의 전부가 소비에 지출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자영업자는 사업자금으로 지출하고 그 외 사람들은 부동산 혹은 기타 투자자산에 지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뚜렷한 상환대책도 없는 무분별한 소비에 지출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빚내서 소 잡아먹는 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최근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세계적인 수요 감소로 고민 중인 위스키 업계에 한국이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젊은이들은 프라다 구찌 루이뷔통 등과 같은 소위 명품을 구매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새로 분양 받은 아파트의 멀쩡한 싱크대, 변기, 벽지, 장판 등 내장재를 다 뜯어내고 고급 내장재로 바꾸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망각을 쉽게 한다고 하지만 불과 5년전의 처참했던 상황을 너무도 쉽게 망각한 것은 아닌지.

 

 

/남천현(우석대 회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