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지펴지는 반미(反美)문학

 

 

“해방 이후 이 땅에서 벌어진 미군 만행의 실상을 작품화해 발표하겠다”

 

지난달 28일 (사)민족문학작가회의(회장 현기영) 소속 작가 1천여명은 문인의 단 하나뿐인 무기 ‘펜’으로 미국의 횡포에 맞서겠다고 다짐했다.

 

여중생들을 치어 죽인 미군의 무죄평결에 대한 항의였다. 온·오프라인에서 분개하며 일어서는, “미선이와 효순이를 살려내라”는 온 국민의 외침에 동참하는 문학인들의 선언은 주제의식의 변화를 예고한다.  

 

사실 한국 문학사 반미는 뜬금없는 소재가 아니다. ‘새로운 점령자’로부터 역사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노력은 문인들로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왜놈의 씨를 받아/소중히 기르던 무리들이/이제 또한 모양만이 달라진/새로운 점령자의 손님네들 앞에/머리를 숙여/생명과 재산과 명예의/적선을 빌고 있다’(유진오의 시 ‘누구를 위한 벅차는 우리의 젊음이냐?’)

 

한민족의 현대사는 줄곧 분단과 독재, 외세로 왜곡되어 왔다. 그 역사와 현실을 펜으로 고발하려다 숫한 문인들이 화를 당했고 그들의 작품이 선봉에서 필화를 불렀다.

 

1946년 전위시인 유진오(兪鎭五·1924∼?)는 미군정정책을 왜곡·비방했다는 죄목으로 해방 후 첫 필화(筆禍)문인이 됐다.

 

시인 정공채(鄭孔采·67)와 소설가 남정현(南廷賢·69)도 반미의 대표적인 문인이다. 정씨는 長詩 ‘미8군의 차’(현대문학 63년 12월호)를 발표, 반미주의자로 몰렸고, 남씨는 우화·풍자적 기법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고발한 단편소설 ‘분지’(糞地·현대문학 65년 3월호)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반미적, 반정부적 감동을 일으키게 한다’는 것이 판결의 이유였다. 이 사건은 김지하의 ‘오적’과 함께 현대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필화사건으로 기록된다. 

 

‘분지’의 뒤를 이은 것은 천승세(千勝世·64)의 단편 ‘황구의 비명’(1975)이다.

 

미군 부대에 인접한 기지촌을 무대로 한 이 소설은 미군의 정액받이로 전락한 한국 여성의 현실을 우람한 외국산 수캐에게 짓눌린 가냘픈 황구(黃狗)의 비명으로 표출했다.

 

그 처절한 외침을 80년대 반미문학의 선봉이었던 작가 윤정모(57)가 귀기울였다.

 

미국과의 모순된 고삐에 종속 당할 수밖에 없는 여인의 삶과 올가미를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을 소설 ‘빛’‘고삐’ 등에 담아낸 ‘윤정모’는 80년대 여성해방과 반미의 상징이었다.

 

그후에도 미국인 기업체에서 일어나는 파업투쟁을 소재로 한 정도상(43)의 ‘새벽기차’나 “한국은 식민주의가 종식된 것이 아니라 신식민주의가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발한 박완서(71)의 ‘엄마의 말뚝’ 등 반미 작품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민족모순론의 대두와 광주항쟁에 미국의 개입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과의 군사·정치적 문제에 대한 논쟁이 확산, 심화됐던 탓이다.

 

민중시인 김남주(金南柱·1946~1994)는 시 ‘삼팔선’으로 안보를 내세운 미군 주둔이 남한 내 계급모순에 기여하는 현실을 직설적인 어조로 고발했다.

 

‘미군이 있으면/삼팔선이 든든하지요/삼팔선이 든든하면/부자들 배가 든든하고요’

 

시인 정호승(52)도 ‘혼혈아에게’를 통해 미군 병사에게 겁탈 당한 한국 여성이 낳은 혼혈아를 매개로 한미관계의 본질을 물었다.

 

‘너의 고향은 아가야/아메리카가 아니다/네 아버지가 매섭게 총을 겨누고/어머니를 쓰러뜨리던 질겁하던 수수밭이다/찢어진 옷고름만 홀로 남아 흐느끼던 논둑길이다/지뢰들이 숨죽이며 숨어 있던 모래밭/탱크가 지나간 날의 흙구덩이 속이다’

 

지금껏 노동·농민·빈민·반미·분단 등을 다루었던 작품은 이른바 민중문학이라는 형태로 불려졌다. 하지만 이제 반미는 대중문학의 한 형태로 자리잡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침묵과 껍데기뿐인 수다가 공존하는 시대, 그리하여 새로운 폭력이 가해지는 이 시대에, 문인들은 과연 어떤 구체적인 행위로 맞설 것인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