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별 쌀 소비량이 급격히 줄면서 지금은 쌀이 남아 돌지만 지난 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쌀의 절대량이 부족했다.
60년대 중반까지 5∼6월의 보릿고개는 여전했고, 정부는 혼식및 분식장려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학교 선생님들이 점심시간이면 학생들의 도시락을 점검하여 쌀밥을 싸온 아이들을 혼내주던 때가 바로 그 시기였다.
당연히 정부는 쌀 증산에 모든 국력을 집중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탄생된 벼 품종이 72년 국내에 처음으로 보급된 후 ‘녹색혁명의 주역’으로 불렸던 ‘통일벼’였다.
서울대 허문회교수가 69년 태중재래 1호와 유카라의 1대 잡종벼에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의 기적의 볍씨라는 IR3호를 교잡 육성하며 개발했다.
통일벼는 키가 작아 비바람에 잘 쓰러지지 않았고 병충해에도 강해 당시까지 단보당 4백㎏까지 끌어 올렸다. ‘반만년의 배고픔을 해결했다’는 평가가 과장되지 않을 정도로 77년에는 총생산량 4천1백70만석이라는 사상 최대의 풍작을 이루었다.
단지 미질이 좋지 않은데다 밥맛이 나쁜 흠이 있었다. 우리나라 농업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할 통일벼도 쌀이 남아 돌면서 밥맛을 우선하는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91년 우리 들판에서 완전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가 쌀에 관한한 양과 질적인 면에서 이처럼 자급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에 세계의 빈곤인구중 3분의2가 몰려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우리를 비롯 세계 각국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서울대 최양도·명지대 김주곤교수 팀이 미국 코넬대 레이 우 교수와 함께 박테리아에서 추출한 트레할로스라는 유전자를 기존벼에 주입하여 다수확·고(高)저항상의 새로운 ‘슈퍼 벼’품종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다, 새 품종은 추위나 가뭄에 강해 극지방이나 사막에서도 재배할 수 있고 수확량도 20% 이상 늘릴 수 있다고 한다.
벼 품종 역시 다른 작물과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자연적, 또는 인위적으로 도태와 진화를 반복해 왔다. 새로 개발된 슈퍼 벼도 언젠가는 통일벼와 같은 운명에 처할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새 벼 품종이 국내학자에 의해 개발되는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밥맛도 좋고 수확량도 많은 새 품종이 잇달아 개발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