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으로 고통을 당하는 모든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우리는 언제나 대형 사건과 사고가 터질 때마다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임을 강조하며 추후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된다는데 공감하고 나름대로 사후조치를 취해 왔다.
그런데 이런 참혹한 사건을 또다시 겪게 되다니 그동안 경험했던 사건사고의 경종이 아직도 부족해서인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각종 보도자료들을 접하면서 이번 참사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합작품(合作品)'이 적당하지 않을까 한다.
가연성 소재로 구성된 열차 내부시설의 문제, 화재시 배연 등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지 않은 승강장의 환기구조 문제, 비상시 작동되었어야 할 전원 문제, 화재시 승객안전을 고려했어야 할 승무원의 안전의식 문제,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승객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지않은 역무원 문제, 그리고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종합사령실 등등 어찌보면 이번 사건은 시설과 인력 그리고 그 운용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었다.
이런 문제점들은, 여늬 사건 뒤에도 그랬던 것처럼, 어느 정도 개선이 될것으로 기대한다. 더불어 이런 문제에 대한 제도적인 감시와 견제장치도 마련될 것이다.
그 다음, 머지 않아 세인들의 기억 저편으로 아스라히 잊혀질것이 분명하다. 이 역시 전에 있었던 사건사고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쳇바퀴처럼 반복될 것이 뻔한 일련이 과정들을 떠올리면서 엉뚱맞은 '민주주의'란 단어가 연상되는 것은 왜일까?
우리는 민주국가에 산다.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민주국가를 움직이는 힘은 다수의 국민에게서 나온다. 그래서 선거철만 되면 출마자들이 머리를 읊조리며 한 표를 호소하는 대상도 우리 국민들이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선거가 끝나면 이들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민주국가에서 국민들 손에 뽑힌 사람이 전횡을 휘두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국민들의 감시가 소홀했거나 이들의 행동에 동조 또는 방조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하철과 관련된 문제뿐 아니라 이 나라에서 불쑥불쑥 터지는 각종 사건사고의 배후에는 '이 정도는 괜찮아'하는 안전불감증이로 쪄든 우리들의 방기와 방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은 아니었는지 반문해 본다. 그 점에서 사실은 우리도 공범(共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