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퇴출된 주판

 

 

 

매년 요즘같은 학년초가 되면 학생을 둔 가정에서는 새 학기에 필요한 학용품을 준비하느라 부산하다. 책가방이나 노트, 필기용구 등은 그동안 품질과 디자인의 변화만 있었을 뿐 계속 사용되고 있지만 사라진 학용품 중의 대표적인 것이 주판일 듯 싶다.

 

지금 40대 이상의 장년층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70년대 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기본교과목으로 주판(珠板)을 이용하여 계산을 하는 주산을 가르쳤다. 어린이 두뇌발달에 좋다고 해서 도시에는 주택가 골목마다 주산학원이 즐비했었다.

 

상업고교 출신으로 주산만 잘하면 은행 취직은 떼어 논 당상이었다. 당시 상업고교의 실력 수준은 주산 유단자 학생 수로 평가하기도 했다. 또 선거때면 전국에서 올라오는 투개표 상황을 집계하는 것도 주산 유단자 학생들의 몫이었다.

 

그같은 주판이 80년대 전자계산기가 대중화되면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여 지금은 우리생활 주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의 신세대들에게 주판을 설명하려면 골동품 가게를 찾아야 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산판(算板), 수판(藪板), 주판(珠板)으로도 불리는 주판의 원조는 3천여년전 지금의 이라크를 중심으로 한 에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사용한 모래주판이다. 모래를 깐 판자를 여러 행(行)으로 나누어 그 위에 줄을 긋거나 기호를 써서 계산했다고 한다.

 

약 2천5백년전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에서는 선(線)주판을 사용했다. 판자위에 여러 개의 줄을 긋고 그 위에 돌을 놓아 계산했다. 선주판은 그후 아라비아 숫자가 보급되면서 필산(筆算)으로 바뀌어 17세기말경 사라졌다.

 

동양에서는 중국 후한(後漢)말에 서악(徐岳)이 쓴 '수술기유'(藪術記遺)에 주판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선조때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해온 주판은 주로 윗알 1개에 아래알 4개 짜리이고, 아래알이 5개인 것도 있었다. 예전에는 윗알 2개에 아래알 5개인 중국식 주판이 사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주판이 개발된지 불과 50년 정도인 전자계산기에 자리를 빼앗기고 퇴출당한 셈이다. 우리는 섬세한 손가락 끝의 감각을 지녀 손재간이 뛰어난 민족이다. 사라져버린 주판을 자라나는 세대들의 손재간 발달과 두뇌개발의 수단으로 다시 활용했으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