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이면 내게 이런 운명이 주어졌을까를 생각하며 그 사람으로부터 도망을 치고 싶은 마음이 되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내 삶을 보낼 수가 없다는 마음의 괴로움에 혼란스러워질 때 다시 그 사람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그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이 사람은 나를 사랑했던 사람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 순간 제 마음은 편안해지면서 그 사람은 저의 소중한 남편이 되고 저는 그 사람의 소중한 아내가 되어집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은 진정으로 끌어안아야 되는 것은 바로 저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항상 그렇게 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요."
진정 사랑하는 사람 두었는가
지난 해 이맘 때에 상영된 영화 "Beautiful Mind(브티플 마인드)"
한때 잘 나가는 천재 수학자이자 교수였던 남편, 존 내쉬를 남편으로 맞아들여, 나름대로는 남부럽지 않은 인텔리 가정을 이루었던 알리샤라는 여인,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정신분열증에 시달리게 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남편으로 자신의 십자가요 짐으로 다가왔을 때, 그리고 좀처럼 치유되지 않을 그런 나날을 보내면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태에 빠졌던 그녀가, "요즈음 그런 남편을 두고 사는 심정이 어떠냐?"라는 조심스런 질문에 한 대답이다. 자존심 때문에 표현하기 싫었고, 참고 참아왔던 마음이지만, 남편의 친한 친구였던 "솔"의 안타까운 질문에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한 때 행복했었다. 잘 나가는 남편, 천재이자 자신을 가르친 교수, 그 실력이나 위치에 있어서 자신이 충분히 기댈 수 있고 안길 수 있었던 남편을 두었다는 그 행복, 그러기에 그녀는 그런 멋진 남편을 사랑했지만, 정작 그녀가 사랑해야 할 남편은 그 모습이 아니라 무력해지고 초라해지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남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때로는 자신이 책임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다가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혼란스러워하기도 하지만, 그런 순간 이제는 무력한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해야하고 사랑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절망적인 상태에서 그녀는 "사랑의 진면목"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사랑의 시작은 세상이 모든 것이 그녀 남편으로부터 떠났을 때, 그의 곁에는 오직 자신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눈물어린 사랑의 체험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남편 친구 "솔"은 그런 그녀에게 진심으로 이렇게 말한다. "당신 남편은 행운의 사람이다"라고. 어쩌면 그의 이 말 속에는 비록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잃었을지라도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한 사람을 곁에 둔 친구가 부러웠을 것이다.
베트 밀러라는 가수가 부른 "The Rose"라는 팝송 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영혼의 끝을 자르는 면도날과 같다고도 하고, 먹어도 먹어도 끝없이 느끼는 허기와도 같다고 하지만, 저는 사랑을 당신과 나 사이에 뿌려진 씨앗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화려함 속에서 눈부심 속에서 남들과 비교되는 우아함 속에서 그 열매를 맛보려고 하지만, 그리고 사랑은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음악 선율 속에 두려고 하지만, 그래서 모두가 "나를 위한 열매"를 원하지만, 서로가 함께 가꾸어 나가야 할 "씨앗"이라고 잔잔하게 말하는 노래가사가 알리샤라는 여인을 통해 아련하게 다가온다.
모두가 남편을 부끄러워하고 외면할 때,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삼키며 남편과의 삶을 가꾸어나가는 여인의 모습을 영화 "Beautiful Mind"는 말 그대로 아름다운 마음으로 그녀를 표현하고 있다.
사랑의 참맛 아는 부부돼야
지난 전북일보 2월 18일자 신문은 전북 여성 발전 연구원이 지난해 7월 도내 성인여성 1천명(기혼 7백 98명)을 대상으로 전라북도 여성의 의식 및 생활실태를 면접 조사한 결과를 보도하며 도내 기혼 여성 중 47.1%가 이혼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는 기사를 내었다.
물론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다 있고 함께 고개를 그덕이며 수긍하게도 되지만, 왜 그런지 다시 한번 알리샤 남편의 친구 솔의 질문을 던지며 그처럼 감동에 젖고 싶다.
"요즈음 부부관계는 어떠십니까?"란 질문과 함께 "당신의 남편은 행운의 사람이군요."라고 말할 수 있는 그 감동의 마음이고 싶다. 그 무슨 낭만의 초치는 얘기냐고 묻겠지만 독신으로 사는 필자는 화려하고 넉넉한 환경보다도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서로를 위해주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부부들을 보며 "사랑의 참맛"을 함께 체험하게 된다.
/서석희(천주교 전주교구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