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린다고 하면, 군복을 입은 사담 후세인의 얼굴이나 총을 들고 검은 콧수염을 기른 군인들이나, 알라시드 호텔바닥에 '범죄자'라는 글씨와 함께 새겨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걸 아세요? 이라크에 살고 있는 2천4백만명 중에서 절반이상이 15세 미만의 어린이라는 걸.
저를 한번 보세요. 찬찬히 오랫동안. 여러분이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걸 생각했을 때, 여러분 머릿속에는 바로 제 모습이 떠올라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제가 운이 좋다면 1991년 바그다드의 공습대피소에 숨어있다가 여러분이 떨어뜨린 '스마트'폭탄에 살해당한 3백명의 아이들처럼 그 자리에서 죽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운이 좋지 않다면 바로 그 순간 바그다드 어린이 병원의 '죽음의 병실'에 있는 14살의 알리 파이잘처럼 죽게 될 겁니다. 알리는 걸프전에서 사용한 열화 우라늄탄 때문에 악성 림프종이라는 암에 걸렸습니다.”
미국 메인주 커닝햄중학교에 다니는 샤롯 앨더브런(Charlotte Alderbron)이란 13살 소녀가 지난 5일 열린 반전(反戰)집회에서 연설한 내용이다.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
What About the Iraqi Children? 이라는 이 연설은 너무도 감동적이다.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그리고 왜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말해준다. 어느 지도자의 전쟁관련 연설보다 압권이다.
요즘 언론에는 온통 미국과 이라크 전쟁에 관한 소식뿐이다. 특히 TV는 미국과 영국 연합군이 각종 첨단장비를 갖추고 바그다드를 향해 진격하는 모습을 3차원 그래픽으로 소개하고 있다. 주로 CNN을 통해 동시통역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은 마치 컴퓨터 오락게임을 보는 것 같다. 크루즈 미사일, 아파치 헬기, 스텔스기 등은 흥미를 더해주는 소품들이다. 제목도 '불타는 바그다드'등 선정적이기 이를데 없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전쟁'이라 하기에는 너무 일방적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도 거치지 않는 사적(私的)제재, 즉 린치에 가깝다.
TV를 보고 있으면 마치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보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우리나라에 PC방 증가의 폭발적 원인을 제공한 이 게임은 그래도 정정당당하다. 저그와 프로토스라는 외계종족과 테란이라는 인간종족 사이에 벌이는 전략시뮬레이션으로, 세 종족은 각각 다른 모양과 쓰임새의 유닛과 건물을 가지고 있다. 이들 세 종족은 강점과 약점이 있어 어느 한 종족이 절대우위를 차지할 수 없는 구조다.
이에 비해 이번 전쟁은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이 걸프전이후 12년 동안 경제제재와 무기사찰 등으로 손을 묶어 놓고 치르는 원사이드한 게임이다. 그런 점에서 스타크래프트 게임만도 못하다.
그렇다고 사담 후세인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부시와 후세인이 서로를 '악의 축'과 '악의 세력'이라 하듯 오십보 백보 사이다.
카우보이 부시는 중동의 석유패권을 차지하고 미국의 군산복합체 유지 등 철저한 자국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후세인 정권이 테러조직과 연계되어 있고 대량살상무기를 예방하기 위한 전쟁(preventive war)이라는 것은 구실에 불과하다. 아버지 부시가 시작한 걸프전 이후 미국의 경제봉쇄로 죽어간 이라크인만 17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사담 후세인 또한 24년째 이라크를 통치하고 있는 독재자다. 엠네스티 집계에 의하면 집권이래 100만명을 처형했고 400만명이 국외로 도망가 살고 있다. 쿠웨이트 침공, 쿠르드족 학살 등도 그가 주도한 범죄행위들이다.
누가 더 사악한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또한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의 말처럼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일지 모른다. 문제는 이러한 이기적인 지도자들로 인해 고귀한 생명들이 죽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美패권주의 북한 놔둘리 없어
더구나 부시는 이라크 다음 차례로 북한을 겨냥하고 있다. 미국과 우리 정부 모두 부인하고 있지만 영변 핵시설에 대한 정밀폭격까지 거론하는 것으로 미루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아랑곳 없이 공격결정을 내리는 오만한 미국 패권주의가 북한이라고 놔둘리 없다.
그러면 누가 이를 막을 것인가. 중국이? 러시아가? 아니면 김정일 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이? 모두가 글쎄다. 만의 하나라도 한반도에 짙게 드리운 전쟁의 그림자가 현실로 나타난다면 어쩔 것인가. 샤롯 앨더브런의 다음과 같은 외침은 천둥같은 소리로 우리를 일깨운다. 반전에 나서라고.
"여러분의 아들이 사지가 절단되어서 고통속에 몸부림치고 있는데도, 아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고 그냥 무기력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딸이 무너진 건물의 돌더미에 깔려서 울부짖고 있는데 구해줄 수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를때 두렵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모를 때 혼란스럽습니다.”
/조상진(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