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한 탓인지 우리나라처럼 당명(黨名)이 자주 바뀌고 정치권이 이합집산하는 나라도 드문 것 같다. 박정희(朴正熙)나 김대중(金大中)정권같이 혁명이나 수평적 정권교체로 집권당이 바뀐 예는 차치하고라도,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김영삼(金泳三)정권처럼 한뿌리에서 재집권한 경우도 어김없이 신당이 탄생했으니, 대한민국을'정당공화국'이라 불러 손색이 없을듯 하다.
반세기 헌정사에 어제 이름짓기도 힘들만큼 수많은 정당이 뜨고 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 정치인들이 이렇게 권력지향적이고 공명심에 빠져있나, 새삼 놀라운 생각이 든다.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취임도 하기 전, 살생부라는 괴문서가 나돌아 분위기가 심상찮다 싶더니, 또 정치권 새판짜기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안희정(安凞正)민주당 국가발전연구소 부소장을 시작으로 이강철(李康哲)의원이 구주류와의 결별 가능성을 흘려오다, 최근에는 신주류의 좌장격인 김원기(金元璂)고문과 이상수(李相洙)사무총장, 염동연(廉東淵)전 정무특보까지 총출동하여 '신당 추진'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보면, 구주류 측 짐작대로 뭔가 시나리오가 있긴 있는 것 같다.
사실 정치권에선 집권당이 신당을 창당할 것이라는 말이 떠돈지 오래다 기본 구도는 다당제(多黨制)로 그리고, 새로 태어날 신당은 민주당 신주류와 한나라당의 개혁성향 그룹, 수도권 초재선 구룹, 부산경남권 의원들이 주축이 된다는 설(說)이 파다하다. 여기다 노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정치 신인들이 대거 참여하면, 이념 중심의 거대한 개혁적 전국 정당이 탄생하면서 기존 정당들은 보수적 지역 정당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민주당과 한나라당·자민련은 호남과 대구·경북, 충청권을 기반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꼬마 야당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아직은 구체적 정황이 없지만, '5월 거사설'까지 공공연히 나도는 것을 보면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정치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민도가 높아져 지금의 지역구도가 깨지지 않는 한, 집권세력이 의도한 것과는 정반대로 갈공산도 없지 않다. 민주당 구주류가 ”스스로 걸어나가면 망하지만, 쫓겨나면 반드시 살아날 것"이라고 장담하는 이유는 다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