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가 막 부활한 지난 91년 12월5일 전주시장실 앞 복도.
전주시의 기관위임사무에 대해 행정사무감사를 하겠다던 도의회 감사반원들이 도착하자 전주시의원 몇몇이 서성이다 도의원들의 팔목을 잡고 저지했다.
도의원들은 당시 김인식 시장에게 "시장과 시의회가 합동으로 감사를 방해하려는 게 아니냐”며 "시의원들이 왜 이리 저질이냐”고 고함치자 시의원 7∼8명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저질발언을 취소하라며 거칠게 항의했다.
결국 감사를 하지 못하고 감사장을 빠져나오는 도의원들에게 "쌍놈의 새끼들, 어디에서 목을 빳빳이 하고 다녀, 목을 빼버리겠다”며 시의원들이 욕설을 퍼붓자 시의원과 도의원간에 멱살잡이와 온갖 욕설을 쏘고 맞받는 추태가 시정잡배처럼 벌어졌다.
사무는 명분, 실제는 기관 이기주의
이 광경은 주민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 의회가 감사를 놓고 충돌한, 지방의회 초창기 상처같은 기억이다.
지방자치법상 지방자치단체의 기관위임사무는 시군의회에서 감사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도의회에서 감사하지 않을 경우 기관위임사무 자체가 사각지대화 된다는 게 도의회의 감사 배경이었지만 도의회가 국정감사를 거부하겠다면서 시군감사를 하려는 것은 모순이고, 기관위임사무와 고유사무가 혼합돼 있기 때문에 그 구분이 명확치 않을뿐더러 중복감사로 위민행정을 어렵게 한다는 이유로 이런 반발을 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비판이 있을 법하다. 오히려 감사를 해달라고 요청해야 할 감사 사각지대에 대해 전주시의회가 감사를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주민의 감사요구 여망을 스스로 포기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행정의 독주를 차단하고 비리를 낱낱이 파헤치겠다고 주민들 앞에 공언한 선거때의 사자후를 상기한다면 사생결단 식으로 감사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고 하겠다. 반면 도의회의 경우는 하급기관 앞에서 떵떵거리며 권위주의적이고 전시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한 심리적 노림수가 바탕에 깔려있었다.
양비론적 시각을 편다고 뒤퉁수를 얻어맞을 망정, 주민의 대표기관인 두 의회는 당시 지극히 기관 이기주의적인 판단을 기저에 뿌리박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키 어려웠다.
최근 전북도의 감사를 앞두고 남원 등 시군 공무원들이 감사거부 입장을 밝히고 나서 하나의 이슈가 되고 있다. 남원시의 고유사무에 대해서는 도가 감사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감사를 받지 않겠다는 것인데 칼로 무 자르듯 기관위임사무와 고유사무를 구분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주민들은 무엇이 고유사무이고 위임사무인지 관심도 없다. 관심이 있다면 '기관과 기관간 갈등' 또는 '왜 감사를 거부하려는 것인지' 정도일 것이다. 감사를 벌이면 한 자치단체당 1백여건이 넘게 적발되고 수십명씩 징계조치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대다수 주민들은 '감사는 필요하다'는데 동의할 것이다.
투명 행정, 공정 행정 다짐속에서도 이런 감사결과가 나오는데 만약 상급기관이 감사를 하지 않는다고 상상을 해 보라. 물이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시군의장단협의회가 지난달 시군의회 사무국에 대한 감사중단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낸 것도 이기주의적인 행태에 다름 아니다. 지방의원들과 관련된 업무부서에 대해 감사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도 뻔뻔스럽지만 의회사무국을 집행부가 제대로 감사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지나던 소도 웃을 일이다. 감사 사각지대로 방치되면 곰팡이가 스는 토양을 제공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주민위한 것인지 판단해야
이런 실정을 이해한다면 시군의회가 사무국에 대해 감사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권위주의의 발로 이외에는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다고 하겠다.
중요한 것은 감사거부나 중단요구가 기관 이기주의적인 관점에서 거론되는지 아니면 주민을 위한 시각에서 다뤄지고 있는지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주민들이 이성을 갖고 판단해야 할 사안중의 하나이다.
/이경재(본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