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따구리] 산불피해 현장 1년뒤의 모습

 

 

따뜻한 봄날, 텃밭에서 배추를 다듬던 여든의 시골할머니 모습은 한가로워 보였다. 포근한 날씨에 파란 배추잎은 그 빛이 도드라져 보였다. 마을사람마다 곧 시작될 농사준비로 분주해 보였다.

 

완주군 이서면 앵곡마을은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하지만 지난해 봄은 여느해처럼 평온하게 보내지 못했다. 지난해 4월14일 산불로 마을 주변 야산 등 74.5ha가 불에 탔다. 2001년 도내 전체 산불피해규모가 56ha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피해규모다. 당시 산불로 4가구가 완전히 불에 탔고, 8가구도 부분적인 피해를 입었다.

 

화재가 난 다음날 마을을 찾았을 때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임시거처를 마련하고 한숨짓고 있었다. 그리고 손한번 쓸새없이 집을 삼켜버리던 산불의 무서움에 질린 표정들이었다. 또 불덩어리가 수십m의 거리를 날라다니며 옮겨붙는 무서운 광경을 실감나게 전해주기도 했다.

 

꼭 1년이 지나 다시 찾은 이 마을은 제자리를 찾은 모습이었다. 농사철로 한결 바빠진 모습은 논과 밭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지난해 마을회관이나 불타버린 집앞에서 만났던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당시의 기억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 1년전 산불얘기를 꺼내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때론 입술을 바르르 떨기도 했고, 피해를 입고도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했다며 흥분하는 모습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행여 또 불이 나진 않을까 마음 한켠에 근심을 안고 사는 심리적 후유증도 여전해 보였다.

 

지난 주말에는 산불로 숯덩이로 변한 마을 인근 야산에 나무를 심었다. 면사무소와 마을주민들이 참여했지만 벌거숭이가 된 산에 1년 전의 모습을 되찾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모른다.

 

산불의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흉한 모습을 지켜봐야 할지 모른다. 마을사람들은 건조해지는 요즘, 그때의 악몽이 다시 떠오르곤 한다고 말했다. 식목일과 행락철이 다가오는 지금, 이 걱정은 비단 이 마을사람들만의 걱정만은 아닌 것 같다.

 

/이성각(본사 사회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