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창] 살인사건, 무죄와 유죄사이

조상진 정치부장

 

 

#1. 1981년 6월 24일 밤 11시께.

 

전주시 효자동 2가 자림원앞 고개길에서 이 동네 주민 최현석(20·인쇄공)씨가 칼에 찔리고 고무밧줄로 목이 죄어 숨진 시체로 발견됐다. 수사에 나선 전주경찰서는 사건 발생 18일만인 7월 12일 이 사건의 범인으로 전주대 신축공사장 인부였던 김시훈(30·대전시)씨를 검거, 범행을 자백받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김씨가 사건발생 당일 전주대 신축공사장 감독으로 부터 '말썽을 자주 일으키니 떠나라'는 말을 듣고 격분, 탁주 4병을 마신후 밤 11시께 공사장에서 1㎞ 떨어진 고개길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김씨는 최씨가 술에 취한채 비틀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오다가 부딪쳐 시비가 되자 갖고 있던 과도로 최씨를 찌르고 자전거에 있던 고무밧줄로 목을 죄어 숨지게 했다고 밝혔다.  

 

#2. 1995년 6월 12일 오전 8시 40분께.

 

서울 은평구 불광동 M아파트 708호 문틈에서 흰 연기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목격한 경비원의 신고로 출동한 소방관들은 오전 9시 40분께 치과의사 최수희(여·31)씨와 딸(1)의 시신을 발견했다. 두 모녀는 목이 졸린듯한 자국이 있었고 물이 담긴 욕조에 떠 있었다.

 

불은 안방 장롱속 옷가지에서 처음 발화한 것으로 추정됐다. 최씨의 가방에 있던 현금과 수표 50여만원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경찰은 최씨의 남편인 외과의사 이도행(33)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전북대 의대 출신인 이씨는 이날 개업을 위해 일찍 출근한 상태였다. 검찰과 경찰은 이씨를 소환, 거짓말 탐지기를 동원했고 내노라하는 국내 법의학자들도 나섰다.  

 

#3. 2002년 9월 20일 0시 50분께.

 

전주시 덕진구 금암2동파출소에서 소내 근무중이던 백성기(54) 경사가 흉기에 난자당해 숨져있는 것을 동료직원이 발견했다. 백경사는 허리띠에 실탄 4발과 공포탄 1발이 장착된 38구경 권총을 차고 있었으며 이 총기도 탈취당했다. 파출소 내부에 CC-TV가 설치돼 있었으나 작동하지 않았다.

 

전북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사건 발생 122일만인 2003년 1월 20일 박모씨(21)등 3명을 살인용의자로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사건 발생 4개월전에 무면허로 경찰에 압류됐던 88cc 오토바이를 훔치기 위해 파출소를 찾았다가 백경사와 말다툼 끝에 이같은 일을 벌였다는 것. 경찰은 범인들이 음식물 절취사건으로 검거된뒤 여죄를 추궁하다 범행일체를 자백받았다고 밝혔다.

 

이상은 전북과 관련된 살인사건들이다. 특히 #1과 #2는 증거재판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둘 다 무죄가 선고되었다.

 

#1(김시훈 사건)은 1심 전주지법에서 무죄, 2심 광주고법에서 징역 15년이 선고되었다. 그리고 대법원에서 판결을 기다리던중 이리경찰서에서 진범이 검거되었다. 이 사건 판결은 우리나라 사법(司法) 1백년사중 국가배상법 위헌판결(1971년)과 함께 최고의 명판결로 꼽힌다.

 

피의자의 인권보장에 획기적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다. 당시 재판부는 "수사기관에 의해 강요된 진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한국판 'OJ 심슨사건'으로 불리는 #2(치과의사 모녀 피살사건)는 사건발생 7년8개월 동안 1번의 사형선고와 3번의 사형구형 끝에 무죄가 확정되었다.

 

검찰과 변호인의 법정 공방과정에서 모의실험이 등장하고 스위스의 세계적 법의학자가 증인으로 나서는 등 숱한 화제를 뿌렸다. 또 전주 중앙성당 신자들을 중심으로 '이도행을 생각하는 모임'이 결성될 정도였다.

 

#3(백경사 피살사건)은 경찰이 범인을 잡았다고 발표해 놓고도 절도죄 외에는 기소조차 못하고 있다. 연인원 1백만명이 동원되었으나 결정적 물증인 총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인색출도 중요

 

실로 형사사법의 역사는 인권옹호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체적 진실을 찾되, 수사기관 등 국가권력의 강압으로 부터도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열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무고한 한사람을 처벌하지 않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인권은 어쩔 것인가. 또 그 가족의 인권과 원통함은? 결국 무고한 한사람을 처벌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범인도 놓치지 않는 것이 형사사법이 추구해야할 궁극적 목표가 아닐까.
새로운 전북경찰청장이 부임했다. 범죄학을 전공하고 유명대학의 겸임교수까지 겸하고 있다. 살인사건, 그것도 동료경찰의 살인사건을 어떻게 해결할지 지켜보고자 한다.     

 

/조상진(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