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양성자가속기와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을 연계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쉽게 말해서 국가의 숙원사업인 방사선 폐기물 관리시설을 유치하는 지자체에 양성자가속기를 주겠다는 것이다.
그 동안 온 도민이 일치단결해서 추진해온 양성자가속기 유치 노력이 한 순간에 수포로 돌아갔다. 더군다나 사실상 익산이 최종 후보지로 여러가지 객관적인 평가지표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떨어진 청천벽력인 까닭에, 지금까지 가속기 유치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많은 분들에게 극도의 허탈감을 안겨주었다.
물론 정부의 고뇌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방사성 폐기물 때문이다. 국내 전력의 40%를 공급하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지난 25년 동안 발생한 폐기물의 양이 누적되어, 더 이상 현재와 같이 원자력발전소에 임시 저장해 놓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서는 어딘가에 반드시 처분시설을 건설해야 한다. 우리 세대에 주어진 숙제인 셈이다.
잘 알다시피 전북의 고창이 최근 산업자원부가 발표한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의 후보지에 포함되었다. 또 얼마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한국전력 및 한국수력원자력(주)의 본사를 비롯하여 원자력연구소와 원자력병원과 같은 관련 산하기관을 관리시설을 유치하는 지역에 이전하는 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바 있다.
만약 이것이 정부의 정책으로 확정된다면,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은 더 이상 고창의 문제가 아니라 전라북도 전체의 일이 된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의견 수렴을 거쳐, 전라북도 발전의 새로운 전기로 활용하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국무회의의 의결은 많은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일관성이 결여된 정책방향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 스스로가 제시했던 게임의 법칙을 일순간에 뒤집어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게 만드는 정책은 수용할 수 없다.
정부의 기본은 국민에 대한 신뢰다. 특히 이제 막 출범하는 새로운 정부가 자기들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관성을 저버린다면 국민의 신뢰를 어떻게 얻을수 있겠는가 묻지 않을수 없다. 어제와 같은 특단의 조치가 내려진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의 사회 구현 차원에서 이번 조치는 반드시 백지화되어야 한다.
/양문식(道 과학기술자문단 단장, 전북대 생물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