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콜렉터'

 

 

우리 삶 속에서 때로 영화적이라고 일컬어질만큼 황당한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이 상식적이든 비상식적이든 가상(假想)의 현실이 진짜 현실로 다가올때 받는 정서적 충격의 파장은 매우 크다.

 

엊그제 서울의 30대 엘리트 벤처회사 직원이 저지른 '여중생 납치감금 사건'도 그런 범주다.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이 젊은이는 A4용지 10매에 달하는 '사육계획서'를 작성한 후 열두살짜리 여중생을 납치하여 '내 이상형의 여자로 키워 결혼할 계획' 아래 범행을 저질렀다 한다. 납치 이틀후 그 여중생이 극적으로 탈출하여 덜미가 잡혔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영화 '콜렉터'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두렵다.

 

영국 작가 존 파울즈가 1963년에 발표한 소설 '콜렉터'는 나비 채집가인 한 남자가 나비를 채집하듯 한 여대생을 자기집 지하실로 납치감금해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65년 영화로 제작돼 국내에 소개된바도 있다. 이 소설은 편집광적인 외톨이 곤출 채집가의 사랑과 소유라는 지극히 평범한 명제를 다루고 있지만 범행 과정을 인간심리의 내면을 통해 묘사하면서'사랑의 감정에는 파격성과 맹목성이 따른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번에 범행을 저지른 젊은이가'콜랙터'를 모방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감금한 여중생의 손목에는 수갑을 채우고 비명을 지르지 못하도록 테이프를 얼굴에 붙힌 상황등은 영화속의 한 장면과 매우 흡사하다. 결국'영화적 사건이 현실 세계에서 재연돼 충격을 안겨준 것이다.

 

지난 90년에 만들어진 한 외국영화에서도 비슷한 스토리가 전개된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한 남자가 여자를 납치한다. 이 여자는 처음엔'당신을 결코 사랑하지 않을꺼야. 절대로'라고 절규한다. 그러나 결국 최후의 순간에는 그를 받아 들이고 만다. 남자와 여자의 운명적 만남이 공포와 모멸감을 거쳐 연민의 정으로 발전해 사랑으로 매듭지어지는 과정이 그야말로 영화적이다.

 

경찰은 이 젊은이의 범행을 일종의 과대망상 증상으로 보고 정신감정을 의뢰하기로 했다한다. 그러나 주위의 평가로는 지극히 정상적인 삶을 살아온 평범한 샐러리맨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런 그가 상식을 벗어난 엽기적 범죄를 저지르게 한 동인(動因)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우리사회의 인간소외, 사랑과 생명의 가치에 대한 몰이해, 문화환경의 변화등을 두루 생각케 하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