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장님] 군산 임피면 상갈마을 고홍근이장

 

 

인물의 고장이라 다른 지역과 달리 마을이장도 하기 쉽지 않은 곳에서 이장직을 3년째 맞고 있는 군산시 임피면 월하리 상갈마을 고홍근이장(56).

 

고이장은 젊은 시절, 농업기반공사 전신인 전북농조의 대의원을 2차례나 선출될 정도로 활동적이었지만 이리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지라 젊은시절엔 주로 서울 등지의 회사를 전전하는 객지생활을 했다.

 

전기관련자격증만도 3∼4개에 달해 마을에서는 전기박사로 통한 고이장은 그래도 한번 배운 농사일이 그리워 15년전 부인 권정숙여사(54)와 함께 농사를 짓기 위해 무작정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가 농조일을 할 때 부인 권씨가 마을의 부녀회장을 맡아서 할 정도로 안팎으로 활동적인 부부로 소문나 있다.

 

"스무살에 월남전에 참전할 정도로 젊은 시절에는 안해본 것없이 바쁘게 살았으나 항상 공허했지요. 공고를 졸업, 전기면허증도 많아 얼마든지 도시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농사를 짓겠다는 일념으로 전체 가족들과 함께 도시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지요. ”

 

십수년간의 농사일을 하다보니 마을 일에 직간접적으로 자연스럽게 참여했고 3년전부터 마을 일을 보고 있는 고이장은 최근 이웃들과 함께 하는 친환경농법에 푹빠졌다.

 

WTO와 같은 엄청난 풍랑으로 과거식 농사법로는 살수 없다는 것을 진작 깨달은 고이장은 농가소득제고를 위해선 환경농업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 올해부터 마을 주민들을 적극 설득해 EM(미생물)농법과 쌀겨농법을 도입하는 등 환경농업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고이장은 "화학비료를 이용한 농업은 이제 통하지 않는지 오래됐다”고 전제한뒤 "인근 제희RPC측과 함께 선도적인 친환경농업을 시도한 것”이라고 환경농업의 근본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는 퇴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운영을 재배, 화학비료에 의한 농업은 더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더 많은 농민들이 참여하길 기대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고이장의 노력 덕분에  보수적인 마을 주민들이 절반이상 참여했을 뿐 아니라 전국 최고의 미질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한데 뭉쳤다.

 

이 동네 80여가구중 실제로 농사를 짓는 가구의 절반인 22농가가 EM농법과 쌀겨농법에  참여, 무공해 고품질쌀이 올 가을이면 월하리 들녘을 뒤덮을 것이라며 부푼 기대를 하고 있다.
그는 "이같은 농법을 할 경우 Q마크를 얻을 뿐 아니라 쌀값보장과 함께 친환경농업의 가능성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환경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을 유래, 정유재란때 高씨 정착

 

군산에서 동북쪽으로 가다 보면 호원대 주변의 산자락(학당산)을 끼고 있는 월하리 상갈마을.
이 마을은 제주 고씨의 문충공파 집성촌으로 상당수가 익산지역 고등학교를 다닐 정도로 익산시에 가깝다.
이곳의 역사는 고씨일족들이 조선 선조때 정유재란 전후시기로 왜적의 침입을 피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지만 칡덩쿨이 많아서 갈운리라고 불리웠다.

 

이 마을은 과거 80년대 농수부장관이었던 고건총리가 가뭄피해(한해)를 입고 있는 고향민들을 위해 관정장비로 1백50m의 지하수를 팠으나 수맥을 찾지못했었다 한다. 여기에 동원된 관정장비가 석유탐사용이었다는 말이 나돌정도였다. 마을사람들은 이같은 원인을 '葛'(갈)자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이곳은 임피군 남일면지역으로 지난 1914년 행정폐합에 상갈, 하갈리의 각일부와 남이면의 신평 일부와 익산 서일면의 모산리 일부를 통합해 월하리로 개칭됐다.

 

이 마을의 유래는 고씨(문충공파)의 중시조 목사공 '고서'(익산 용안현감 등을 지냄)가 1597년 완주군 고산면 용회리에서 일가족을 이끌고 이곳으로 집단이주하면서 비롯된다.
이후 고씨 일족들은 관계 등에서 맹활약했고 그들의 활약상은 다른 가문이나 마을에서 보기 드문 3개에 달하는 효자·효열비각이 이 동네에 존재하고 있다.

 

이곳은 학당산이란 이름에 걸맞게 주변에 호원대학교가 들어설 정도로 배움의 도량으로 한때 1백50호를 자랑했던 큰마을이었다.
최근에는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60대이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변해있다.

 

마을 사람들, '고건 총리의 고향'

 

월하리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지만 전국적인 인물들로 지역은 물론 전국에 널리 알려져 있다.
두차례에 걸친 총리와 서울시장 등을 역임한 고건총리와 그의 부친 등 직계들 때문에 여느 농촌지역에선 보기 드문 인재의 고장.

 

고총리의 부친 고형곤 전전북대총장, 친형 고석윤변호사(행시와 사시합격), 사촌형인 두고그룹명예회장 고석영씨, 사촌형 고석구 전 서울대교수(영문학과) 등 전국적인 인물을 고향이다.
이와함께 학계로는 고덕영 전주공업대학교수와 고남영 벽성대학교수 등이 이곳출신이고 기업인으로는 고근영 코리아 이멕스공장장, 고재영씨 등이 활약하고 있다.

 

고규영 서울경찰청 (경정), 고기영 익산소재 부부치과원장, 고찬영 전 전북도계장, 고계장의 친동생인 고남영 동군산농협이사 등이 있다.
이밖에 고씨는 아니지만 이마을 노진만씨의 자제인 노현필씨와 노중필씨 등은 서울대를 졸업한뒤 LG연구소와 금융감독원에서 일하고 있다.

 

이같은 인물들이 배출되면서 고씨의 선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곳이 '고건총리의 선영'으로 깊은 관심을 끌면서 최근 전국풍수지리연구가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이 마을에 대한 관심은 고총리의  중시조 '목사공 고서'의 부인이었던 광산 김씨할머니 묘 등 선영이 다수 들어서 있기 때문.

 

해발 몇십m에 불과한 학당산에 위치하고 있지만 인근 명산중의 하나인 함라산의 줄기에 있는 이곳은 일반산에선 보기 드물게 1만여평에 달하는 넓은 구릉과 하루 종일 태양을 바라볼 수 있는데다 손바닥모양의 '장심혈'명당이어서 전국 풍수연구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고씨종문중 지역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고석교씨(68)는 "이곳에 묘지를 쓸 수 있는 집안사람들도 제한하고 있고 앞으로 총리가 더 나올 수 있다는 풍수연구가들의 얘기가 있다”면서 무척 고무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