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매스컴에서는 지난 해 한일 월드컵에 관한 기억을 되살리기에 바쁘다. 지금 다시 보아도 가슴 뭉클한 장면들이다. 우리 민족이 모두 하나라는 일체감을 심어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행사였다.
이런 월드컵의 감동에 묻히긴 했지만 6월에 느꼈던 또 다른 감격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있었던 '대한민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2000년 6월 13일 우리 국적의 비행기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영공을 날았다는 것과 평양 공항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이어진 파격적인 북한 당국자들과의 만남, 그리고 극적으로 6·15 남북공동 선언문이 나오기까지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합의된 공동선언문의 내용은 첫째,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모색 둘째, 통일정책을 남북 공통인식에서부터 추진 셋째, 인도적 문제의 조속한 해결 넷째, 민족경제의 균형발전과 사회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 활성화를 통한 신뢰 구축 다섯째, 이상의 합의사항 실천을 위한 조속한 대화 개최 등이었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 등도 합의사항에 포함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런 감격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 더욱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 6월의 다시 왔지만 이제 월드컵이 감동만 반추될 뿐 6·15 공동선언에 대한 감격은 사라진 지 오래다. 오히려 작금의 상황은 특별검사와 수사대상이 되어 6·15 공동선언을 이끌었던 주역들이 줄줄이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통치행위였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이 무색하게 그들의 사법처리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도 부족해서인지 이제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필요성까지 언론에 오르내리는 형국이다.
물론 6·15 공동선언과 무관하게 모 대기업의 부정행위가 있었다면 사법처리가 마땅하다. 하지만 6·15 공덩선이라는 초법적 행위까지 그 대상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우리가 때로는 모르는 것이 더 나을 일도 있는 법이다. 문득 피천득 교수의 '인연(因緣)'이라는 수필이 생각난다. 세번째 만남은 차라리 없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피교수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