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여 지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말이나 글, 때로 눈빛으로라도 여러 사람이 한 사람 "죽이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다.
그 때 그 순간 나름대로의 합당한 이유와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 마땅히 "죽어줘야 할 존재"로 규정하고 합법적으로 포장해서 한 개인의 삶을, 한 집단이나 국가의 삶을 잔인하게 짓밟고 유린하면서도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하나의 흐름"으로 여기면서 살아가게끔 하는 그 분위기와 여건 속에 우리는 실제로 당하는 피해자의 모습으로, 때로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로, 때로 침묵하는 방관자의 모습으로 서있을 때가 많은 것이다.
언론매체의 역기능 다룬 영화
"지구촌 생중계"란 말이 너무나 당연한 일상용어로 정착하면서 이제는 먼 나라의 살벌한 전쟁도 안방에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환경 속에서 우리는 오늘날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가를 실감한다.
또한 이제 어지간한 사건을 보아도 별로 흥미를 못 느끼는 우리에게 보다 더 쇼킹하고 보다 더 신기하고 보다 더 엽기적인 가십거리를 제공하려는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눈물겨운 노력(?) 속에서 과연 이러한 현실이 항상 좋기만 한 것인가? 정말 바람직한 것인가?
"우리 모두가 그를 죽였다."_영화 "MAD CITY"의 마지막 대사이다. 지난 2000년도에 개봉한 영화 "매드 시티(Mad City)"는 그러한 매스 커뮤니케이션 환경 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과연 행복한가를 진지하게 묻는 영화 중의 하나이다. 한때 방송국의 인기기자였던 맥스라고 하는 사람은 메인 앵커와의 불화로 지방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늘 본사로 돌아가길 희망하며 특종을 노리고 있지만, 지방 방송국에서는 그에게 평범하고도 시시한 기사만을 다룰 것을 요구할 뿐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는 한 지방 박물관의 예산 감축 소식이나 취재하라는 지시에 박물관으로 갔다가 예기치 못한 사건을 취재하게 된다. 예산 감축 때문에 해고당한 그 곳 박물관 경비원 샘이라는 사람이 박물관 관장을 찾아와 "다시 한번 고용해 달라"고 애원하다가 거절당하자 겁을 주려는 마음으로 총을 꺼내게 되는데, 그 순간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총이 발사되어 다른 경비원이 총에 맞게 되는 불운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총소리를 들은 경찰이 출동하게 되자, 샘은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박물관을 견학하던 어린이들을 위협하는 인질범이 되어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이 된다.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맥스도 기회다 싶어 이 광경을 TV로 생중계를 하게 된다.
또한 맥스의 유도로 샘은 치밀한 인질범으로 둔갑하며, 언론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건을 유도 하게 된다. 결국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너무 커져버린 상황을 견디다 못해 샘은 스스로 자살하게 되는 것으로 이 영화는 결말을 맺는다.
이 영화 속에서 인질범으로 몰린 샘은 원래 그렇게 악한 인간은 아닐뿐더러 그는 단지 해직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 것이었지만 상황은 좋지 않게 전개되고, 그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시청률을 올리려는 방송인들의 비열한 모습을 이 영화 속에는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 종말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그렇게 미쳐가는 도시에서, "우리 모두가 그를 죽였다 (We all killed him)" 라고 절규하는 맥스의 목소리가 변명처럼 들린다. "다 죽이고 나서 죽이는 맛을 본 산 자들이 하는 구차한 변명"인 것이다.
이 영화는 언론매체에 의해서 한 사람이 어떻게 왜곡되고 파괴되어 가는지 보여주면서, 그러한 현실이 단지 영화 속의 가상현실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불행한 사실임을 일깨워줍니다.
매체 종사자들 진정한 보람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역기능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 아니다. 커뮤니케이션 매체 종사자들이 그들을 그들이게끔 하는 그 힘,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그들 자신을 진정으로 감동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그 보람과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고 싶은 것이다.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볼 때, 세상이 자신에게 좀 더 공평하고 존중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다른 이들도 그러한 당신들과 다를 바가 없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경의를 표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하늘(=신)에 대한 외경(畏敬)과 인간의 대한 연민(憐憫)을 가슴에 안고서 자신들의 일에 성실할 때, 진정한 보람과 기쁨이 있을 것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분들에게 종교적인 경건함을 가지고 존경과 사랑으로 무릎을 꿇는다.
/서석희(천주교 전주교구 홍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