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여성 인물사] 김기옥

 

며칠 전 김기옥(1917년생·전주시 완산구 삼천동)을 집 근처에서 만났을 때 87세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고 자태가 고와 깜짝 놀랐다. 95년 전북여성운동사를 연재하기 위해 만났을 때에 비해 변한게 있다면 연륜과 깊이를 느꼈을 정도.

그리고 전북도 여성행정을 돌아보며 들려주는 얘기를 들으면서 놀라운 기억력과 그 명석함에 또한번 놀랐다.

김기옥은 전북도 여성 행정사에 초대 전북여성회관장으로 기록돼 있다.
지난 54년 10월 도 문교사회국(부녀국에서 변경) 사회과 부녀계 촉탁으로 들어갔다가 55년 1월 5급 공무원 시험을 봐 진급하게 된다.

"해방 직후인 당시는 행정에서도 문맹 퇴치를 위한 계몽에 나서고, 고아원이나 영아원 양로원 모자원 등 복지시설에 운영비를 쏟아부었지요.”

1968년 10월31일 전주시 고사동(전 KBS전주방송국 앞,현재 금암동에 위치)에 전북여성회관이 준공된 뒤 전라북도의 여성 행정 틀이 바뀌게 된다. 요보호 여성, 말하자면 성매매 여성이나 미망인 등 수혜 여성층을 대상으로 행정을 펼쳐왔으나 여성회관 설립을 계기로 일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도 운영되게 된 것이다.

김기옥은 69년 전북여성회관의 초대 관장으로 부임한다. 육영수 여사를 모시고 이환의 도지사와 부인을 비롯한 도내 여성계 인사들이 모인 가운데 개관식을 성대하게 가졌다. 72년 2월 55세로 정년(4급 갑)을 맞기까지 비록 3년의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김기옥은 심혈을 기울여 전북여성회관의 초석을 다져놓았다.

"야간 강좌도 있었지. 교사 은행직원 회사비서 타이피스트 등 전문직의 미혼 여성들이 많이 왔었어. 그 때는 '부덕 함양'이 목적이라 육아 부인병 요리 등을 가르쳤지. 양재와 편물, 조화 만들기가 인기가 높았어. 주부대학도 운영했고 꽃꽂이 발표회, 생활개선 발표회도 했지.”

도 예산으로 진행되던 여성회관의 모든 강습에 수강료(재료는 수강생이 준비)가 없었다. 그래서 남부시장을 지나가던 장바구니 든 아주머니들이 낮에 잠깐 들어와서 수강했을 정도였다. 여성회관 강당을 대관료 안 받고 무료로 빌려줘 특히 대한부인회 어머니회 절제회 여자저축회 전주YWCA 한국여권옹호전북지부 등 여성단체들의 호응을 받았다. 강당을 예식장으로도 운영해서 가난하고 가족이 없는 사람들에 큰 도움을 주었다.

"여성회관에 도서실도 있어서 글 좀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와서 놀다 가곤 했지요.”

김기옥은 무엇보다 전국 최초의 어머니합창단인 전라북도여성회관 어머니합창단을 조직해서 활동했던 것이 지금도 뿌듯하다. 천길량 전주교대 교수(작고)의 지도로 연습하면서 한국방송공사(KBS) 초청으로 서울에서 연주회도 갖고, 향토부대나 고창 해리 초소에 가서 위로 공연도 했다. 김성지 전주교대 명예교수가 맏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