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영화광고를 쳐다볼 때마다 화가 치미는데 그건 전북지역의 극장이름이 돋보기를 이용하지 않으면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코딱지만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 예컨대 부천 같은 신흥지역까지도 지명과 극장이름이 대문짝만하게 나오는데 전북지역의 그것들은 대단한 공을 들이지 않고는 글자를 알아보기 조차 어렵다.
아무리 상업성 때문이랄 망정 크기와 배치에서 '천대'하는 것은 우리지역이 공급자의 안중에도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쩌다 우리지역은 영화광고에서까지 홀대받아야 하는가 하는 한탄스런 생각도 하게 된다.
강원지사 '익은 밥 먹고 선소리'
우리는 인사와 예산, 각종 정책 등에서 신물이 나도록 홀대와 푸대접을 경험해 온데 이어 광고의 카피에서 마저 쪼그라진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지역을 바라보는 중앙이나 다른 지역의 의식의 세계는 영화광고의 카피보다 더 작은, 그래서 안중에도 없는 미미한 존재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나라를 흔들고 있는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의 '실패한 영웅'들의 입놀림을 보노라면 더욱 그렇다. 김진선 강원지사는 2010년 평창유치가 실패하면 2014년 동계올림픽은 무주가 유치신청에서 우선권을 갖는다는 동의서를 자필로 쓰고 그 내용을 KOC에 제출했다. 2002년 5월의 일이다. 그런데도 그는 2014년에도 평창유치를 재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익은 밥 먹고 선소리 한다'는 속담은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을 핀잔주는 말인데 이런 경우에 딱 들어맞는다.
이창동 문화부장관은 평창유치에는 실패했지만 2014년 유치 예약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술 더 뜨고 있다. '세사람만 우겨대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속담도 있고 보면 이창동장관까지 가세한 게 여간 우려스럽지 않다.
우리지역이 영향력이 막강한 강한 전북이라면 과연 신의를 깔아뭉개면서 전북이란 존재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발언들을 쏟아낼 수 있을까.
김진선 지사의 약속파기 의사는 마치 "군주는 신의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 신의를 무시하고 계략으로 사람을 혼란하게 하는 군주가 큰 일을 해 왔다”는 마키아벨리의 사고를 연상시킨다. 여우의 교활함과 사자의 용맹 처럼 말이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는 위선과 과장, 허위와 기만의 산물”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떤 반도덕적 행위라도 결과에 따라서 정당화된다”고 적고 있다. 김지사는 적어도 이런 정치적 사고를 실천하려는 것인가.
동계올림픽은 그냥 굴러오나
김지사는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2010년 평창올림픽유치 특위 진상조사 참석에 앞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진실과 사실관계가 밝혀지고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옳은 말이다. 김지사는 마찬가지 논리로 이제 동의서에 사인한 사실을 강원도민에게 알리고 문광부나 KOC에게도 이런 사실관계가 있었다는 걸 규명해 주어야 한다.
'단독개최에서 공동개최-주개최지 양보- 2014년 유치 신청의 우선권-평창재추진' 과정을 보면서 전북인들은 무얼 느껴야 할까. '떡 하나 주면 안잡아먹지'식의 긴가민가에서 이제는 아예 통째 갖다 바쳐야 하는 것인가.
전북입장에서 동계올림픽은 배반의 역사이자 오늘날 전북의 위상, 구체적으로는 쪼그라든 도세를 확인하는 이벤트이기도 하다.무주군이 벌떼처럼 일어나 고군분투하고 있긴 하지만 정치권이나 다른 자치단체, 지방의회 어디에서도 성낸 모습을 볼 수 없다. 전북은 언제까지나 영화광고의 카피 처럼 돋보기를 써야 찾아볼 수 있는 미미한 존재로 남아있을 것인가.
/이경재(본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