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메아리]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라

 

'민족대사'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온 나라가 함께 숨을 죽였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이제 그 결과도 공개되었다. 약 70여 만 명이나 되는 전국의 수험생들이 한 장의 수능시험 성적표를 받아들고 기쁨에 겨워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한숨과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이제 며칠후면 수험생들은 자신들이 받았던 성적표를 마치 운명의 계시처럼 생각하며 숫자의 높낮이에 맞는 대학을 선택하느라 또한번 대혼란을 겪을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서 신문 사회면에 실린 작은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끈다. 대전에 사는 20세의 삼수생이 수능성적을 비관하여 고층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였다는 것이다. 이 아파트 20층 계단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부모님께 수능시험을 잘 봤다고 거짓말한 것을 후회하며, 부모님의 기대에 못 미쳐 죄송하다”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생명처럼 존귀한 것은 없다

 

시험을 망쳐 형편없는 결과가 나오거나, 대학입시에서 낙방한다는 것이 얼마나 쓰라린 고통인지는 경험해보지 않고 상상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오죽이나 괴로웠으면 스스로 목숨까지 끊었겠는가 하는 짐작이나 해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에서 우리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이란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절대로 안되는 존귀한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의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없다. 부모님의 하늘같은 사랑과 은혜를 받아 생명을 얻은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에 따라 생명을 받은 것이라 가르친다. 그래서 생명을 함부로 한다는 것은 부모님이나 창조주에 대한 씻을 수 없는 불효요, 모독을 저지르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윤리적 측면을 떠나 한번 생각해 보자.

 

이 세상에서 단 한번도 크고 작은 실패를 겪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또한 그러한 실패로 인해 자기 자신을 혐오해보지 않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자기혐오를 가장 강하게 느끼는 것이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이다. 3?40대가 되어서도 자기혐오에 빠지지만, 10대나 20대 만큼 강하지는 않다. 젊은이들은 꿈과 야망이 원대하기에 자기혐오 또한 상대적으로 큰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실패에 따른 자기혐오가 바로 자신을 성숙시킨다는 것이다.

 

성공은 도전하는 자의 몫

 

'나폴레옹 콤플렉스'란 말이 있는데, 나폴레옹은 알려진 바와 같이 못생긴 외모에, 작은 키, 거기에다 서민계급의 가문에 학력 또한 보잘 것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바로 그러한 자신의 콤플렉스 때문에 진짜로 위대한 나폴레옹이 된 것이다. 부족한 것을 보상, 해소하려는 끝없는 욕구가 바로 도약을 위한 분발심에 불을 붙였던 것이다.

 

올해 수능시험 결과가 나빠 고민하고, 절망에 빠진 수험생이나 학부모께서는 필자의 말에 주목해주시기 바란다.

 

21세기는 분명히 학벌이나 전공보다는 능력을 중시하는 시대가 될 것이 확실하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무엇을 전공했는지 보다는 한 개인이 무슨 일을 할 줄 아는가 하는 능력이 더욱 우선되는 시대가 된다는 말이다.

 

벌써부터 명문대학보다는 한 가지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파고들어 그 분야에 능통한 전문가가 된 사람들이 사회적 성공을 거두고 있지 않는가?

 

어느 시대에건 진정한 성공의 영광은 한번의 실패도 모르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실패의 고배를 마실 적마다,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다시 일어나 새롭게 도전하는 자의 몫인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유명한 강타자들은 모두 삼진을 엄청나게 당하는 사람들이다. 또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은 10개 중에서 겨우 3개 정도의 볼을 때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인생은 장거리 경주와 같아서 초반에 아무리 잘 달려도 결국 승패는 마지막에 누가 우승 테이프를 끊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결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실패야말로 여러분을 크게 성장시키는 약이 될지도 모르니까.

 

/경기대학교 총무처장겸 홍보실장 윤 산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