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도착한 섬은 적막감이 감돈다.
자그마한 산봉우리를 병풍삼아 바다를 바라보고 앉은 학교도 움직임이 없다.
농어촌 지역에 폐교가 늘면서 이렇게 조그마한 학교는 이제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 보아야만 지금도 학교인지를 알 수 있다.
건물은 교실 4칸이 전부다. 그것도 온기가 있는 곳은 2칸뿐. 교육여건 개선사업에 따라 새로 지어지는 도시 아파트숲속의 그림같은 학교건물과는 거리가 멀다.
살짝 들여다 본 교실.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오래된 풍금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학생은 고작 2명이 전부다. 나란히 놓인 책상 2개의 높이는 언뜻 보기에도 한뼘이상 차이가 난다. 학교의 막내둥이인 승표와 맏언니 희라가 짝이 된 1·5학년 교실이다.
2학년 찬규와 소정·지은·은지, 그리고 3학년 희선이가 복식수업을 하고 있는 옆교실은 상대적으로 꽉 차보인다.
4학년과 6학년 학생은 아예 없으니 이들 7명이 전교생이다.
군산시 옥도면 야미도리 산30번지에 자리잡은 신시도 초등학교 야미도 분교. 농어촌지역 소인수 학교가 자꾸 사라지면서 도내에 남아있는 초등학교 분교는 모두 9곳뿐이다. 이중 야미도 분교는 도내에서 학생수가 가장 적은 학교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이미 육지가 된 군산 비응도에서 농업기반공사 직원의 안내로 새만금방조제를 따라 섬까지 11.7km정도를 달렸다. 눈보라속에 비포장 제방길을 대형 덤프트럭의 진흙세례까지 맞아가며 달리다보니 20분동안 차가 엉망이 됐다. 하지만 불과 몇달전 방조제로 연결되기 전이라면 궂은 날씨에 섬에 들어갈 수 있을지를 걱정했을 것이다.
1학년 승표는 옆자리에 항상 의젓하게 앉아있는 선배 희라가 든든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고 군산에 나가있는 누나들 대신 응석도 받아주기 때문이다.
여느 섬처럼 야미도 학생들도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모두 부모와 떨어져 중학교가 있는 군산에서 생활한다. 선생님이 천사표라고 부르는 희라는 뭍으로 나간 승표 누나 3명의 몫을 대신해준다.
"선생님이 어쩌다 자리를 비우면 자꾸 딴짓을 해요. 그럴땐 말로 타이르고 그래도 안되면 간지럼을 태워서 책을 보게 만들어요.”맏언니 희라가 개구쟁이 승표를 보살피는 방법이다.
2학년때 군산으로 전학갔다가 4학년때 다시 섬에 들어왔다는 희라는 "놀이기구를 타기위해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선생님들이 일일이 신경을 써줘서 너무 좋다”면서도 "어느때는 동생들이 심정을 이해 못해줘 답답한 경우도 있다”고 도시학교 생활과 비교했다.
학교에는 교무실이 없다. 1·5학년을 맡은 김상기 교사와 2·3학년 담임인 오영환 교사가 교직원의 전부이니 굳이 공간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어서다.
숫자가 적은만큼 놀이를 하려면 전교생이 참가해야 되고 현장 체험학습도 교사 2명이 자가용을 동원, 하루종일 봉사를 해야 한다.
주민등록상으로는 60여세대 2백30여명이 섬주민으로 올라있지만 실제 거주하는 사람은 25가구에 1백명 정도라는 게 김상기 교사의 설명이다.
지난 1955년 분교로 문을 연 이 학교는 1969년 초등학교로 승격됐지만 학생수가 줄어 1982년 다시 분교로 격하됐다.
하지만 새해에는 학교에 식구가 늘어난다. 현재 6학년이 없는 만큼 졸업식이 필요 없는데다 2004학년도에는 희라 동생인 준호와 소정이 동생 소영이가 입학, 전교생이 9명이 된다. 신입생 2명이 모두 성격이 활발해서 학교에 더 생기가 돌 것이라는 기대다.
희라와 3학년 희선이 그리고 새해 1학년이 되는 준호는 남매사이다. 새해에는 이 학교 9명의 학생중 3분의 1이 희라네 가족인 셈이다. 한 학급이 늘어나면 묵혀두었던 교실도 한칸 새 단장을 할 계획이다.
섬날씨의 변덕은 뭍사람을 당혹스럽게 한다. 구름 사이로 햇빛이 강하게 비치더니 다시 좀전보다 훨씬 강한 바람이 눈보라를 만든다.
수업중인 교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교무실이 없으니 교실로 전화가 오는 것은 어색하지만 당연하다. 2학년 지은이 할아버지다. 궂은 날씨에 발을 동동거리며 집에 올 손녀 걱정에 오늘은 오전수업만하고 보내주면 안되겠느냐는 전화다.
학교에서 지은이네 집이 가장 멀다. 그래봐야 걸어서 고작 10분 남짓이지만 겨울 바닷바람을 잘 아는 할아버지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전수업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위해 학교급식을 맡은 마을주민 집으로 가는 길. 아이들이 눈쌓인 운동장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어느새 축구공만한 눈덩이들이 만들어지고 개구쟁이 승표와 찬규는 양볼이 빨갛게 상기된 채 친구와 누나들에게 자꾸 눈싸움을 걸어온다.
이제서야 학교가, 그리고 섬이 떠들썩해진다. 운동장의 아이들이 낮잠에 빠진 겨울 섬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새해 첫날 학교는 좀 늦은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지역사회의 열망을 자양분 삼아 새 봄 새롭게 문을 열기위한 편안한 휴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