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窓]캠퍼스의 봄날은 오는가

조상진 정치부장

 

몇년전 일이다. 40대 중반에 명예퇴직한 한 회사원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전주에서 근무하다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옷을 벗게 되었다. 어쩔수 없이 서울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가장 실망할줄 알았던 부인이 의외로 침착하게 맞아 주더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동안 애썼다"며 ”쉬면서 일자리를 찾아보자"고 위로까지 해주었다.

 

처음 한두달은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우선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느라 부산을 피지 않아서 좋았다. 오랫만에 여행도 다녀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한두번이지 번번이 얻어 먹을 수도 없었다. 더우기 일자리를 알아봐도 신통치가 않았다.

 

집에 있기도 미안해 매일 아침이면 길거리로 나왔다. 광화문이며 종로를 헤매며 서점이나 상가등을 기웃거렸다. 발에 물집이 생기고 발가락이 시퍼렇게 멍이 든 줄 모르고 걷는 때도 있었다.

 

한번은 일찍 일어나 소파에 누워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때 마침 고3 딸이 학교를 가기 위해 거실을 지나갔다. 딸이 나가자 느닺없이 부인이 화를 버럭 내더라는 것이다. ”애가 밤잠도 못자고 공부하러 가는데 애비라는 사람이 파자마바람으로 벌렁 누워 있으면 어쩌느냐"면서…. 그리고 자기가 회사를 그만두었을때 부인은 엄청 울었다고 고백했다. 이후 그는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다. 자살을 생각해 본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넥타이를 메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워 보일수가 없었다는 말도 들려줬다. 이는 실업의 고통을 당해본 사람만이 아는 얘기다.

 

요즘 대학졸업시즌이다.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에 한껏 부풀어야할 시기다. 그러나 대학가는 들뜬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봄이 오는 길목이지만 아직도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이다. 실업의 아픔은 커녕 취업의 문턱도 넘지 못해 절망하는 젊은이들이 대다수다. 그러니 졸업했다고 축하하며 헹가레칠 기분이나 들겠는가.

 

심지어 나 홀로 졸업식을 치르는 '솔로졸업식'도 대학가의 새로운 트렌드로 잡아가고 있다. 정식 졸업식날 대신, 다른 날을 택해 연인이나 친구들만 참석해 미리 준비한 학사모 쓰고 사진촬영만 하고 끝내는 것이다. 더불어 사은회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통계청은 청년실업률(15-29세)이 8.8%로 치솟았다고 발표했다. 34개월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또 지난해 대졸(大卒) 실업률은 20.9%를 기록했다. 5명 가운데 1명이 백수인 셈이다. 대기업 공기업 금융회사 등 대졸자들이 선호하는 이른바 '괜찮은 일자리'는 최근 5년 사이 20%(32만개)이상 감소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현실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우리나라 통계는 그야말로 '통계수치'에 불과하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20대가 대다수인 군인 70만명이 빠져있고 대학원생, 휴학생, 졸업후 고시생 등은 실업률 통계에 아예 잡히지 않는다. 이런 저런 것을 감안하면 5명중 1명이 백수가 아니라, 거꾸로 5명중 4명이 백수여야 옳은 통계다. 그것도 취업자중 절반은 임시직이나 일용직이다.

 

그래서 대기업 취업은 바늘구멍에 낙타 지나가기요, 취업이 되었다 하면 '가문의 영광'으로 여길 정도다.

 

이제 오륙도나 사오정 삼팔선은 옛말이 되었다. 이태백(이십대태반이 백수)도 언제 더 내려갈지 모르는 일이다. 말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유희로 치부하기엔 우리사회의 청년실업이 너무도 심각하다. 여기에 지방대학을 덧붙여 무엇하랴.

 

이처럼 청년실업이 심각해지자 정부에서는 200만명 일자리 만들기 등 갖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일자리 창출이야말로 최고의 복지요 인권'이라고 외친다. 야당도 이 부분에서는 한 목소리다. 하지만 정작 취업대상자들은 80% 이상이 이를 믿지 않는다. 4·15 총선을 눈앞에 둔 선거전략 정도로 보고 있다.

 

자칫 70년대 유럽처럼 청년고실업 고질병의 초기단계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봄은 오고 있는데 캠퍼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