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비비던 개구리가 팔짱을 끼고 서둘러 개울가 돌무더기에 몸을 숨길만큼, 뜬금없이 쏟아진 3월의 눈발. 그 한복판에서 젊은 여성 춤꾼들을 만났다. 6일과 7일 전통문화센터의 기획공연 '우리 춤의 숨결 19'에 초대된 박수량(32·전주시립국악단 수석단원) 박미진(32·도립국악원 무용단원) 최재희(30·전주시립국악단원) 이고운씨(30·전주시립국악단원).
우석대 무용과와 같은대학원 선·후배로 맺은 인연이 무용단'김경주 자미수현현'으로 이어졌고, 어느 새 십년의 세월에 닿았다. '자미수현현'의 '미'와 '수'인 미진씨와 수량씨. 전남 목포가 고향인 수량씨와 무안이 고향인 미진씨는 광주예고 동창이다. 고향도 다르고 춤사위도 사뭇 다르지만, 서로를 향한 애정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다.
"기존 춤에서 얻은 모티브를 자신의 감각에 맞춰 새롭게 구성한 작품을 올립니다. 자신의 색을 발산하는 무대라고 할까요. 자연의 느낌을 담은 것은 같지만, 창작은 아닙니다.”
창작이라 해도 될법하지만 이들은 굳이 '세미 창작'을 강조한다. 작품의 주제는 춤사위를 아우르는 이미지를 선택해 정했다. 각각 그려낼 꽃과 구름과 물과 땅, 그리고 네 사람이 함께 피날레로 장식하는 마지막 춤은 '월영야무(月影夜舞)고목'이다. 그윽한 향기를 안은 고목이 달빛을 받으며 새 봄 꽃망울을 피워내는 내용이다.
첫 무대는 눈 내리는 마을 풍경을 고요하면서도 화사하게 풀어내는 고은씨의 '화'(花)(부제 '눈꽃으로'). 작곡가 황병기씨의 가야금산조 '춘설'을 듣고 그 음악에 반해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평화롭고 신비하지만, 역동적인 부분을 십분 활용해도 될 만큼 재미있는 현상”으로 해석하는 고은씨는 "가야금 선율이나 가야금을 뜯는 손짓처럼 경쾌한 표현이 특징”이라고 춤을 소개했다. 네사람 중 유일하게 '전주산'인 그의 춤을 선배들은 "화려하지 않으며 솔직하고 담백하다”고 귀뜸한다.
수량씨는 운(雲), 구름이다. "음악이 어려워서 고민이 많았다”고 말하지만 그의 춤은 어느 새 음악을 닮아 있다. 깊이 있는 피리산조에 실린 정적인 춤. 특별한 기교나 장단의 변화 없이 작은 몸짓 하나만으로도 큰 울림을 주는 춤사위다. 후배들이 들려주는 그의 춤 매력은 "정감있고 풋풋함”이다.
대구 사투리와 억양이 그대로 살아나는 재희씨는 '수'(水)를 선택했다. '흐름'이란 부제를 단 이 춤은 거문고 산조에 부채를 활용해 삶의 흐름을 전한다. "접고 메고 펼치는 부채살 사이사이에 강물처럼 흐르는 가락”의 이 춤은 "뿌리는 부채산조에서 시작됐지만 현대적인 감성을 담아 새로운 느낌을 살려낸 것” 이다. 색깔이 강하고 톡톡 튀는 독특한 개성이 매력이다.
'지'(地)를 선택한 미진씨. 그는 박병천의 진도북춤 이미지를 새롭게 창작한 작품을 선보인다. 걸쭉하고 남성적인 기교가 많아 여성이 풀어내기에 무리가 있지만, "시나위조 가락에 풀어내는 남성적인 투박함보다 세련되고 화사한 여성의 몸짓을 보여주겠다”고 소개했다. "이 작품을 통해 북을 이용해 창작할 수 있는 춤의 범위를 넓혀보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카리스마 강한 그의 무대는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경쾌하고 힘있는 북장단에 맞춰 들썩거리듯 하면서도 힘있게 맺고 푸는 맛이 크다고 동료들은 귀뜸했다.
"아직 춤의 완성도에 자신은 없지만 이번 공연을 위해 새롭게 재구성한 작품들이에요. 중요한 것은 이를 계기로 의미 있는 작업을 함께 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입니다.”
우리 춤 고유의 정적인 움직임부터 역동적인 것까지를 두루 아우르며 춤의 생명을 발견해나가고 싶다는 이들은 '꾸미지 않고, 억지로 다듬지 않은 자연스러운 멋'을 표현하고 싶다고 말한다. 공연시간은 오후 7시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