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窓]왜 지방신문이어야 하는가

이경재 편집국장

 

지난해 11월 18일 '지방살리기 3대 입법 관철을 위한 국민대회'가 서울 여의도에서 열렸을 당시 중앙언론은 단 한줄도 이 내용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이날을 '지방분권의 날'로 선포하고 2천여명에 이르는 지방주민들이 국회와 정치권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규모 이벤트였지만 철저히 외면받고 말았다. 중앙언론이 이런 이벤트를 아예 무시해 버리는 이유는 중앙의 권한과 재정이 분산되는 것을 원치 않고, 수십년동안 누려온 기득권이 상실되는 게 싫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들어 국가균형발전이라든지 지방분권 방안이 제도화되고 있지만 저항세력이 만만치 않다. 중앙언론도 그 중의 하나로 보면 틀림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방의 문제를 중앙언론에게 기대하는 건 애시당초 가당치 않고 지방신문들이 그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분권시대 지방신문 역할 커

 

지방신문은 지금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 '자전거일보'라는 빈정거림이 말해주듯 일부 중앙지들의 물량을 앞세운 무차별적 시장침탈과 신문사 난립, 갈수록 줄어드는 광고시장 등이 경영을 압박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전북대 권혁남교수는 한 세미나에서 "마치 산소가 말라가는 어항 속에 새로운 물고기들이 투입돼 기존의 건강한 물고기마저 죽어가는 형국”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호남지역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2000년 한국언론재단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호남지역 지방지(20개) 구독률은 5.9%에 불과하다. 반면 강원지역(2개)은 28.2%, 대구 경북(7개)은 21.3%, 부산 울산 경남지역(12개)은 20.6%로 나타나 호남의 지방신문은 다른 지역에 비해 경쟁력이 더 낮다는 걸 알 수 있다. 전국의 중앙지와 지방지 구독비율 역시 53%대 8.4%로 현격한 격차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구조적 불균형은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시대를 맞아 지역을 대변할 기능이 축소되고 여론의 독과점이 우려된다는 데에 심각성이 있다.

 

이런 원인은 지방신문들 스스로의 문제도 크지만 보다 근원적인 것은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지방의 공동화에 있지 않을까. 정치권력과 경제력이 서울에 쏠려있고,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집중되다 보니 지방은 빈 껍데기만 남았다. 우리의 사고까지 지배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독자들의 입맛까지도 길들여졌을 것이다. 서울에서 일어나는 국회의원들의 활동이나 탄핵국회에 대한 분석, 연예인들에 대한 소식 등등은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으면서 지방정치나 지역사회의 소식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지방신문도 그런 푸대접을 받는다.

 

이런 사정은 외국의 지방지 위상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일본은 지방지의 시장점유율이 38.5%, 프랑스는 71.2%이고 독일은 382개 일간지중에서 373개가 지방지이며 시장점유율도 93.1%에 이른다. 영국의 지방지 시장점유율은 66.6%이다. 노르웨이는 지방지가 전체 발행부수에서 72%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지방신문 구독률이 높은 건 오래전부터 지방분권과 지방자치가 잘 발달돼 주민들이 지방신문을 보지 않으면 불편을 느끼기 때문이다. 정부차원에서 지방신문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각종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도 한 요인이다. 우리도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을 제정했지만 재정지원이 부가가치세 감면 같은 규모라면 모르되 유통구조 개선 정도에 그친다면 별무효과이다.

 

지방신문 육성은 구독이 지름길

 

이런 실정에서 지방신문을 육성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주민들이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길이다. 지역이익을 대변하고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이뤄내는 구심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방신문의 영향력을 키우는 지름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중앙언론에게는 이런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

 

전북대 김승수교수는 "지방신문은 지역사회의 주요한 기업의 하나이며 지방정보의 산실이다. 따라서 지역주민이 지방신문에 관심을 기울이고 구독자가 되는 것만이 지방신문을 지역의 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지방신문이 지역주민의 필수품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지방신문 스스로가 신발끈을 조여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