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황(金載晃)시인을 만나본 적은 없다. 지난 10여년간, 그의 시집과 에세이집으로는 자주 만나고 있었다. 받아 본 시집만도 열권 가까이 이른다.
최근의 시집으로는 《넙치와 가자미》(문예촌, 2004.1)가 있다. 90편의 수록작품을 김시인은 '동시조'라 했다. '동심여선'(童心如仙)이란 말이 떠올랐다. 시집이름에도 마음이 이끌렸다.
더러 횟집에 가면 가자미네 넙치네 하는 생선이름을 듣게 된다. 'ㅇ로늘은 넙치가 물이 좋다'느니 '가자미가 신신하다'느니로부터 그 이름은 들추어진다.
그러나 나의 미각으로는 곧 구분이 되지 않는다. 같은 바닷물고기 생선회가 아닌가, 그맛이 그맛이었다. 미각뿐이 아니다. 몇 번인가, 주방의 조리사에게 넙치와 가자미의 다른 점을 묻기도 하였다.
'가자미는 두 눈이 오른쪽에, 넙치는 왼쪽에 몰려 붙어있다는 숙수의 설명을 듣고도, 정작 실물을 대하면 오른쪽·왼쪽의 구분도 잘 안간다. '저게 넙치인가, 가자미인가' 도로아미타불이 되고만다.
앞사설은 이만 줄이고, 저 시집의 표제시를 챙겨본다.
'이 둘의 몸은 마치/거울을 마주보는 듯/한 쪽은 어둡지만/다른 쪽은 환하구나/옆으로/눕는 버릇도/기막히게 같구나/
'이 둘의 눈은 모두/어두운 곳에 있지만/왼쪽과 오른쪽으로/서로 달리 솔렸구나/무엇이/그리 미운지/눈흘기고 있구나'
이 동심의 시에서 말하고 싶었던 김시인의 속내는 무엇이었던가.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오늘의 세상꼴에 생각이 미치기도 하였다.
이것은 나의 한 버릇인지도 모른다. 옛책을 읽으면서도 거기에만 침혹하질 못한다. 으레 오늘의 세상꼴이며, 사람살이가 어려들기 때문이다. 얼마전 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열전》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저 이야길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안자춘수》(晏子春秋)를 꺼내본다.
두 가지 이야기에 다시금 정이 간다. 그 하나는 월석보(越石父)와의 이야기. 월석보가 한때 죄를 입어 종살이를 하고 있었다. 안자는 수레를 끌던 말 한 필을 풀어 대속(代贖)해 주고 자신의 수레에 태워 집으로 돌아왓다. 집에 돌아와선 아무런 인사도 없이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석보는 화를 내며 안자에게 절교를 청하였다. 까닭을 묻는 안자에게 석보는 다음과 같은 대답이었다.
'군자란 자신이 공이 있다고 남의 신분을 경시하지 않으며, 상대가 공이 있는 자라고 해서 그에게 몸을 굽신거는 짓도 아니하는 것입니다.'
안자는 바로 사과하고 술동이를 챙겨 예를 행하여 그를 눌러앉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안자가 제(齊)나라 재상이었을 때, 그의 마부(馬夫)를 추천하여 대부(大夫)를 삼아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출입의 수레를 챙길때마다 으레 거들먹거리던 마부가 하루는 스스로 행동을 억제하고 낮추는 것이었다. 평소와 다른 행동을 묻는 안자에게 마부의 대답은 이러했다.
제 계집의 말에 깨달은 바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내의 충고란 '재상께서는 출입에 항산 자신을 낮추고 계시는데 당신은 마부인 주제에 득의만만하니 그 이제 헤어져야겠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안자는 그 마부의 대부로 삼았다는 이야기이다.
안자의 이야기에서도 오늘은 챙기게 된다. 사람의 세상살이라면 반목 아닌 충고와 우의를 높이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