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窓]지역주의, 부활하는가

조상진 정치부장

 

고백하거니와 나는 한때 이문열씨를 대단한 작가로 생각했었다. 샘솟듯 넘쳐나는 작품활동뿐 아니라 주제를 천착하는 치열성과 해박함이 맘에 들었다. 그의 고집스런 표정사이로 언뜻 스치는 고뇌어린 모습이며 억센 경상도 억양도 그리 싫지 않았다.

 

1970년에 발표한 '사람의 아들'을 비롯 '젊은 날의 초상''금시조(金翅鳥)''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등 그의 작품은 대중성과 문학적 향기를 동시에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민작가'라는 찬사가 조금 과장은 됐어도 그럴듯 하다고 수긍했었다.

 

하지만 2001년 7월부터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나를 크게 실망시켰다. 시민단체와의 홍위병 논란에 이어 곡학아세 논쟁 등은 그의 의식의 한 단면을 드러내었다. 지독한 보수성향과 좌익알레르기가 세상의 한 부분만을 편드는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그해 10월과 11월 부산에서 열린 문학의 밤과 '이문열돕기운동본부'회원들에게 던진 그의 말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책을 반납하려 온 사람(대구출신)에게 그는 ”전라도 사람 아니냐"는 말을 두번씩이나 반복했다. 더우기 아니라고 밝히자 그럼 ”부모가 전라도 아니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물론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인들 못하랴만 하필이면 ”전라도 사람"이라니…. 그의 뇌리 한켠에 못된 지역감정이 숨어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그 이후 그의 책은 다시 거들떠 보기도 싫어졌다.

 

나는 대학시절 미당 서정주 선생의 시편들을 암송하고 다녔다. 그야말로 절절이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내는 그의 시들에 흠뻑 빠졌다고나 할까. 하지만 시인 고은씨가 '시의 정부(政府)'라고 예찬했던 그에게도 몇가지 의문이 뒤따랐다. 흔히 알려진 친일(親日)이나 이승만 자서전 집필, 전두환 찬가 같은 것 말고도, 젊은 시절 신라정신에 경도된 그의 시들에 의아해 했다. 나중에 '질마재 신화' 등 고향에 관한 걸쭉한 시편을 쏟아냈지만 혹여 권력지향이나 전라도 출신이라는 컴플렉스가 잠재돼 있지 않나 생각했었다.

 

요즘 17대 총선이 중반의 고비를 넘기면서 잠잠하던 지역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돌이켜 보면 지역주의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함께 40여년간 한국사회를 짓눌러온 두 기둥이었다. 특히 선거때만 되면 지역주의는 영호남에서 어느 한쪽의 싹쓸이로 나타나곤 했다. 1963년 잉태하기 시작해 1971년 대선때 부터 기승을 부리게 된 지역주의는 남쪽을 두동강이로 갈라 놓았다. 맹목적 신앙과도 같아 '건널 수 없는 강'처럼 보였다.

 

그러다 김영삼 김대중 등 두 김(金)씨가 퇴장한 2002년 대선부터 그 농도가 훨씬 옅어졌다. 여기에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동병상련의 지방분권운동이 일어났다.

 

이번 총선에서도 정치권이 지역주의에 기대면서 부활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가 당선되면서 박정희 향수를 자극, 대구·경북지역에서 부터 지역주의에 불을 지폈다. 민주당은 추미애 선대본부장이 광주에서 3보1배로 이 지역 DJ정서를 되살리려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또한 김혁규 경남지사의 영입에 이어 전라남북도 지사의 영입 등 지역주의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인은 권력이 나오는 쪽에 고개를 숙인다고 한다. 예전에는 공천권을 가진 3김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들이 사라진 이번부터는 유권자에게 고개를 숙일 차례다. 그리고 이번 선거야 말로 지긋지긋한 지역주의가 청산되는 계기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