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窓]이미지, 감성 그리고 이벤트

최동성 편집부국장

 

지난 토요일 오랜만에 자영업을 하는 고교 선배를 만났다. 정년퇴직하고 자리잡은 생활이어서 다소 여유가 있어 보였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그 선배는 신문사 다니는 후배를 보자 말문이 먼저 정치쪽으로 터져 나왔다. 총선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중앙당 차원에서만 시끄러울 뿐 정작 후보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이번 선거는 그만큼 정당 경쟁만 불붙어 있고 인물경쟁은 간데 없다. 이미지 정치, 감성 정치, 그리고 이벤트 정치가 판치고 있다.

 

선거 분위기가 아무래도 이상하다고들 한다. 탄핵사태이후 다른 정치적 이슈가 함몰되고 선거기간의 단축과 합동연설회 폐지등 선거법 개정에 따라 후보와 유권자의 진지한 만남이 줄었다. 대신 TV와 라디오 연설회가 그러한 만남의 기회를 대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후보들과 정당들로 하여금 이미지, 감성, 이벤트에 의존하게 하는 것 같다. 과거 선거에서도 이런 경향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큰 절하고, 눈물 흘리고, 빗자루로 쓸고 하는 등의 행태는 예전엔 군소 후보들의 시선 끌기를 위한 고육지책이었으나 이번에는 정당 대표들이 앞장을 서고 후보들이 뒤따르는 총선의 주무기로 사용되고 있다.

 

이들 정당 대표들과 선대 위원장, 주요 당직자들은 또한 4년에 한 번씩 소위 민생투어를 전개한다. 버려져 있던 재래시장, 노인정, 저소득층, 장애인들을 찾아 손을 잡고 아픔을 함께 나누는 이벤트를 연출한다.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진정 이 땅의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해 왔는지 묻고 싶다. 대부분 민생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정쟁에만 몰두해온 ‘정치꾼’들이 아니었던가? 이제와서 표를 달라는 몰염치한 얼굴들이 얄미울 정도다.

 

탄핵의 열풍속에서 인물과 정책위주의 선거가 실종될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그렇다면 후보들이 내건 공약은 무엇을 담고 있을까. 전북일보가 지난 3일부터 10일까지 도내 11개 선거구에서 출마하는 54명의 후보 공약을 진단한 결과 이같은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책적 차별성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공약 리스트는 재탕과 선심의 뒤범벅이다. 온통 이미지 밭이다. 이번 선거의 화두인 정치개혁에다 선심 일색이다. 복지부문은 재원기약이 없어 ‘꽃놀이’와 다름 없다.

 

사실 그동안 우리 정치는 정책대안을 진지하게 제시하기 보다는 지역정서에 뿌리를 둔 정치, 알맹이가 없는 이미지 정치에 몰두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지는 본질적으로 허상에 불과하다. 문제는 허위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이미지 조작이다. 썪은 속을 가리고 깨끗한 인물로 보이려는 조작, 구태의연한 사람을 갖다가 마치 환골탈태한 새로운 인물처럼 보이게 하는 허위과장광고에 의한 이미지 조작이 문제인 것이다.

 

정치인들의 현란한 이미지, 감정 자극, 그리고 이벤트성 호소에 휩쓸려버릴때 유권자의 판단력은 마비되고 만다. 마비된 판단력으로 투표를 한다면 17대 국회에 과연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기만당하고 다시 4년을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점에서, 생각하는 유권자가 되어야 한다. 후보자의 자질을 꼼꼼히 비교해 보자. 장밋빛 정책과 공약이 실천가능한 것인지 따져보고, 정당의 정책 노선과 이념적 성향도 엄밀하게 대조해 봐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화려하고 감성적인 유희에 더 이상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결국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 감성에 휩쓸려 선택 할 경우 그 부담도 유권자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