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느 순간 문득 계절이 왔음을 느끼잖아요. 그러나 자연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시들고 다시 태어나는…. 우리가 지나쳐버리는 순간에도 조금씩 변하고 있어요.”
두번째 개인전 '생명-그 겨울나기'를 열고 있는 서양화가 김영란씨(42). (22일까지 전북예술회관)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는 푸르름이 사라지고 난 후 쇠잔해진 나무를 주목했다. 매서운 겨울을 견뎌내고 다시금 새싹을 틔우는, 마른 나무에서 그는 생명력을 발견한다. 선이 살아있는 시든 가지와 줄기는 캔버스 안에서 또다른 조형성을 갖는다.
"그림의 단계가 보이면 재미없다”는 그는 여러 색을 중첩시켜 순화시킨 화폭을 만들었다. 돌가루를 바른 캔버스에 5∼6가지 색의 아크릴 물감을 뿌리고, 주조되는 색을 다시 넓게 뿌린다. 상감기법으로 나무의 실루엣을 새겨 백토를 집어넣고, 다시 색 조절에 들어간다. 붓 대신 칫솔을 이용해 자연스러운 갈필느낌을 유도하고 서양화에 판화기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여러 단계를 거치는 그의 작업은 작가의 지나간 시간과 다양한 흔적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결코 녹록치 않은, 느리게 사는 연습이다.
첫 개인전 '자연-흔적의 수렴'은 숯가루를 사용하고 위로 돌출되는 거칠거칠한 마티에르가 살아있는 작업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 그는 절제된 색과 넓은 여백으로 편안한 느낌의 사색의 공간을 만들었다. 작가는 "조용히 색을 변화시키고 모양을 변화시키는 자연이 나를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김씨는 현재 전북대 대학원 미술학과에 재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