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JIFF]예술영화를 향한 기나긴 고뇌, 이광모 감독을 만나다

 

'낡은 관행'은 싫다. 얽매이는 것은 더욱 용납할 수 없다.

 

부드러운 말투가 오히려 강렬하리 만큼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완벽주의자, '아름다운 시절'(1998)의 이광모 감독(43)이 경쟁부문인 인디포럼의 심사위원 자격으로 지프를 찾았다.

 

독특한 그만의 영화 세계는 낯선 영화 세상이 펼쳐지는 지프와 너무 가깝다.

 

체류 사흘째. 이감독은 인디비전 심사를 위해 '옥석 찾기' 강행군을 하고 있다.

 

26일 빗 속을 거닐며 도심 속 상영관을 누비던 이 감독은 이미 인디 세상에 흠뻑 취해있었다.

 

인디비전의 작품들을 꼼꼼히 챙겨보고 있는 그는 '정작 자신은 인디성향과 거리가 멀다'고 잘라 말한다.

 

덜 상업적인 대신 미학적 완성도와 대중성을 중요시한다는 점이 인디와 차별화된다고 그는 말했다. 자신의 작품 세계와 전혀 다른 '인디'를 심사한다는 것이 "솔직히 두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지프에서 그가 접한 영화는 모두가 흥미거리다.

 

그는 "이야기 구성과 소재가 다양하고, 작품마다 다큐멘터리나 극영화 등 다채로운 형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놀랍다"고 평가했다.

 

인디비전 경쟁 부문에 오른 15편 중 그가 지켜본 인디 영화는 현재 10편. 이른 감이 있지만, 이 감독은 이미 최고의 상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난 몇 작품을 손꼽아놨다.

 

그는 칸느 영화제에서도 느낄 수 없는 '다양성의 공존'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펼쳐지고 있다며 기대 이상의 후한 점수를 줬다.

 

특히 세계적인 영화제를 두루 다녀본 이 감독이 들려주는 국내 영화제의 현실에 대한 지적은 흥미로웠다.

 

"부산이나 전주 등 국내의 영화제들은 비교우위를 통한 경쟁 관계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다. 연륜도 짧은데다 일정상 영화의 선택면에서도 한정될 수 밖에 없는 작품들을 영화제를 통해 보여주는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어 결국은 각기 내세운 정체성과 영역을 서로 넘어설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죠.”

 

그는 외국의 영화제를 예로 들며, 예매율이나 흥행을 기준으로 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관행을 지적했다. '상업성을 염두에 두고서는 섣불리 관객 앞에서 내놓지 못하는 실험적인 예술영화들을 맘껏 볼 수 있는 곳이 영화제'라고 그는 말했다.

 

시나리오 집필에서 부터 총 제작기간이 11년 소요된 '아름다운 시절'로 1998년 화려하게 감독 데뷔를 한 이 감독은 단번에 색깔있는 감독 대열에 올라선 몇안되는 예술감독이다.대중성이 가미된 예술영화를 추구해오면서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 예술영화를 소개해온 '예술영화의 전도사' 그는 더 유명하다.

 

서울의 둥숭씨네마텍을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전환한 것도 이감독이었다.

 

그는 올해 자신이 대표로 있는 백두대간 창립 10주년을 맞아 예술영화 르네상스의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지난 90년대 예술 영화 대중화 운동 성격과는 전혀 다른 공격적인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아름다운 시절이후 5년 여동안 공백기를 거친 그는 영화 제작에도 전념할 계획도 내비쳤다.

 

이감독은 시나리오 없이 영화를 만들 생각이다. 이미 4년 여동안 자료를 수집해왔다는 그의 다음 작품은 이산가족과 5·18를 소재로 한 2편의 시대극이다.

 

치밀한 제작을 견지하고 있는 그는 최소 3∼4년 후에나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귀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