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과 웹을 기반으로 한 산업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가장 두드러지는 미술분야가 매체미술(Media Art)이다. 80년대 이후 본격화된 매체 중심적인 미술의 유행은 미술의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고 있다. 백남준을 거쳐 매체미술이라는 범주는 컴퓨터를 포함한 첨단 기술을 응용하여 시각적 예술성을 가미한 테크놀로지 아트, 인터넷 즉 웹망 상에서 전개되는 웹 아트, 감상자의 참여와 쌍방 소통에 의하여 내용 자체가 가변적으로 구성되는 인터랙티브 아트 등 다양한 개념을 포괄하게 되었다.
제5회 전주국제영화제의 부대행사로 마련된 지프마인드 2004(Jiff Mind 2004)에 출품된 작품들 중 다수는 위의 개념을 복수로 아우르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비디오 조형으로서의 요소를 지닌 인터랙티브 아트이거나, 테크놀로지 아트이며 웹아트이자 인터랙티브 아트라는 식이다. 이들 실험적 작품이 영화로서 대표되는 영상예술의 미래를 한자락 펼쳐 보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프마인드 전시는 충분히 의미있다.
여러 여건의 미비로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앞서 말한 다양하고 복합적인 매체미술의 전개 방식을 개괄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교육적이었으며, 시간을 두고 낱낱이 세심하게 접근하여 보면 무궁무진하게 펼쳐지는 새로운 감수성의 지평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를 위한 조건이 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라는 것이다. 작가들은 대체로 전시 구성 전체를 하나의 비디오 조형으로 의식하여 의자 등을 방해물로 여긴다. 그러나 스위스 작가들의 전시의 경우 대부분 편안한 의자가 비치되어있다. 소통을 원한다면 방석이라도 깔아 놓으라고 권하고 싶다.
또 시각적 청각적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 가능한 한 각 작업의 공간은 상호 차단, 격리되어 독립되어야 하며 음향 효과가 떨어지더라도 스피커가 아닌 헤드폰을 이용하여 간섭을 줄이고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하다.
스위스 작가들은 가장 첨단적인 동시에 개념적, 철학적으로, 웹망과 신기술의 이용도를 극대화한 작업들을 선보였다. 웹의 바다의 무한한 자원을 예술의 요소로 활용하는 야심이 두드러진다. 얀 토르푸스나 버지트 캠커는 미디어의 첨단기술이 넘쳐나는 와중에 '몸'이라는 극히 원초적인 요소를 소중하게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퍽 인상적이었다.
아래층의 한국작가 전시에서는 '노스탤지아...'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저기술 일세대 매체미술과 단일 채널 비디오 아트로부터 첨단 인터랙티브 아트에 이르기까지 매체미술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보여주는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개론으로부터 각론으로 들어 갈 때가 되지 않았는가 싶다. 미디어 아트를 내세운 전시에서 잡탕을 보여주기보다 테마와 범주를 한정하여 초점을 날카롭게 맞추어 봄이 어떨까 싶다. 고경호의 반영, 홍승혜의 유기적 기하학 등은 명상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전시 맥락 속에서 엄격하게 전시되면 더욱 살아날 것이다. (이때 벤치를 준비하는 것을 잊지 말자.) 전영훈의 꽃, 오창근의 라임 III 등으로는 인터랙티비티라는 화두를 더욱 선명하게 던져주면 좋을 것이다. 권진우, 박형민, 박준수, 정상열의 싱글 채널 작업들은 대형 스크린이 있는 독립 공간에서 더욱 살아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전시가 전북권의 예비작가들에게 미디어 아트의 본령을 탐험케 하고 시류의 강박적 추종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더욱 주체적으로 신문화를 천착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리라 믿는다. 애호가들이여 영화의 바다를 항해하다가 미디어 아트라는 작은 섬에도 들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