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6월 25일 일본전기회사(NEC)의 이지마 스미오 박사는 전자현미경을 통해 탄소막대기를 태우다 남은 검댕이를 관찰하다가 몸 전체가 얼어붙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전자 현미경을 통해 그가 발견한 것은 가느다란 대롱 모양의 탄소 결정이었다. 이름하여 탄소나노튜브의 발견. 혹자는 그래서 그 탄소 검댕이가 어쨌단 말이냐 라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이지마 박사의 우연한 발견은 현대 과학기술 전 분야의 대변혁을 예고하는 서막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지 하나씩 짚어가면서 얘기를 해보자. 먼저 나노(nano)라는 표현은 을 의미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탄소 나노 튜브의 직경이 10억분의 1 미터라는 얘기다. 이 정도 크기의 대롱이라면 이제 인간은 물질세계에서 전자 하나가 지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얘기다. 단순하게 얘기해서 반도체 기술의 발달은 전자가 지나가는, 즉 전류가 흐르는 길을 어떻게 하면 더 작게 만들 수 있느냐 라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과학기술자들이 이룩한, 전류가 흐르는 작은 통로를 만드는 기술은 수 마이크로(, 백막분의 일)의 수준까지였고 더 이상 작게 만들 수 없다는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그 한계를 일거에 해결해버릴 수 있는 열쇠가 탄소 나노 튜브인 것이다. 뿐만인가 탄소 나노 튜브의 작은 크기는 우리 몸 구석 구석을 검사하고 치료할 수 있는 생명 과학 기술 센서에 적극 활용될 수 있다. 둘째로 세계 과학기술계를 흥분시킨 것은 이 물질이 탄소라는 것이다.
탄소는 우리가 전선으로 이용하고 있는 구리만큼 전류를 잘 통과시키니 전류를 통과시키는 작은 통로로 이용하기에 적격이다. 그뿐이겠는가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일 수준의 나노 튜브는 같은 굵기의 강철에 비해 100배 이상 그 강도가 뛰어나다. 이제 탄환이 뚫을 수 없는 방탄 섬유를 비롯한 항공기, 우주선, 각종 상업, 군사용 재료로 널리 사용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더불어, 탄소 나노 튜브는 전자의 이동 통로로 이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연료 전지에 사용되는 수소 원자를 대롱 속에 잘 저장시킬 수 있다.
연료전지란, 물을 전기분해해서 나오는 수소와 산소를 공기 중에서 반응시키면 전기와 물이 나오는 원리를 이용하는 차세대 에너지 원이다. 가솔린 엔진에서 나오는 각종 배기가스가 연료전지에는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에너지 효율은 가솔린 엔진의 두배에 가깝다. 또한 탄소 원자는 그 구조를 비틀거나 꼬아주면 반도체와 전도체 그리고 절연체 사이로 그 전기적 특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특징도 가지고 있다.
어떤가? 이정도면 나노기술(nano technology; NT)분야에서 탄소 나노 튜브가 차지하는 위치를 짐작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은 나노 튜브는 이지마 박사가 만든 것, 즉, 발명한 것이 아니라 자연계에 지금껏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노 튜브를 우연히 처음으로 발견한 것일 뿐이다. 혹 어떤 사람은 아쉽다고 할지 모르겠다. 기왕 우연히 발견될 것이라면 우리 나라 과학자에게 발견될 것이지 하는 섭섭함이 그것이다. 물론, 위대한 발견은 아주 우연한 곳에서 우연한 기회에 시작된다. 그러나 그 발견은 준비된 자만이 얻을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과학기술자는 우연한 그러나 위대한 발견을 놓치지 않고 붙잡을 수 있도록 훈련받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