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부터 닷새동안 일본 동경에서 세 차례 타악연주회를 연 젊은 국악인 조상훈씨(35·타악연주단 '동남풍' 대표). 3년전부터 한일문화교류로 시작한 공연이지만, 그의 장단은 올해 더 신명이 났다. 최근 발표한 첫 음반 '길'(신나라 뮤직)과 동행했기 때문이다. 든든한 지원군. 첫 출전한 병력은 1백개. 고가(高價)였지만 공연을 본 일본인들은 그의 분신들을 대부분 '출가'시켰다. 조총련계 무용가 백홍천씨 등과 올해 11월 일본 공연을 약속하기도 했다.
"들리는 그대로 들으세요. 흥이 난다면 머리나 어깨, 몸의 어딘가부터 들썩거려질 겁니다. 어느 순간 내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이 떠오르기도 하겠지요.”
타악연주자가 개인 독주앨범을 제작하는 일은 흔치 않다. 도내에선 그가 처음. 음반에는 전통의 맥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성운선·조소녀 명창과 나금추·김덕수·이광수 명인에게 우리 소리와 가락을 익히며 한눈 팔지 않고 걸어온 20여년의 시간들. 그래서인지 그는 이 음반을 '지난 학습과정의 추억'이라고 칭한다.
음반에는 호남승무의 맥을 잇고 있는 이매방 명인의 북가락인 고(鼓)와 남사당패의 고사소리로 알려진 비나리, 호남·경기·충청·영남의 뛰어난 장고잽이 가락과 풍물가락을 차용·변형해 집대성한 삼도설장고가락과 삼도풍물가락, 전라도 서부지역의 평야지대에서 발달한 호남우도풍물굿가락 등 그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5곡이 수록됐다.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 새로운 내용을 보여줘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 조금 비껴있는 듯 하지만 "옛것을 충분히 익힌 후에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자세”를 강조했던 그가 첫 앨범에 탄탄한 전통의 기초를 담은 것은 당연하다.
연주곡 중 고와 삼도설장고가락은 미리 녹음된 북과 징 연주에 자신의 꽹과리와 장구 연주로 혼을 입혔다.
"녹음하시는 분들이 장구나 꽹과리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연주음악이 될 수 있다며 매우 흥미로워했어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은 거죠.”
소리를 알면 장단에 감칠맛이 더 생기고, 장단을 잘 타면 소리도 더 기운이 나는 것. 그는 "풍물이라는 기초가 있었기에 사물놀이·판소리·민요·무속음악 등 우리 음악의 여러 장르를 학습하고, 장단의 느낌과 색, 감각의 변화를 알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의 스승 김덕수씨(사물놀이 한울림 예술감독)도 "고향의 가락과 우리의 얼을 지켜온 조상훈의 행보를 눈 여겨 왔다”며 애써 전통을 개척하고, 길닦음하는 그의 성실함과 예술열정을 높이 산다고 말했다.
음반 제작에 도움을 준 예술인들은 많다. 전북대 김원선 교수가 직접 태평소를 불었고, 그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이명훈·박태영씨(동남풍 단원)가 징과 북을 두드렸다. 군산대 최동현 교수와 박숭배씨(전라문화연구소 연구원)는 영어 번역 작업을 자청, 외국인도 쉽게 곡을 이해할 수 있도록 영문해설집을 만들었다. 사진작가 김정우씨는 사진으로 음반의 품격을 높였다. 모두가 그가 살아온 여정속에서 맺은 인연 덕분이다.
"타악 독주의 가치를 나누고 싶다”는 그와 무대를 벗어나 만나는 '길'. 그 '길'을 들으며 걷는 '길'에선 조명아래 반짝이는 그의 땀방울이 금세 떨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