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물건을 놓고 보는 관점에 따라 마음대로 상상하며 즐기는 재미는 상당히 쏠쏠하다. 특히 야외에 가지 않아도 자연의아름다움과 축경(縮景)의 오묘함을 감상하는 수석의 재미는 더욱 짜릿하다. 나는 수석을 잘 모르지만 처음으로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전문적으로 탐석을 하러 다니는 줄 안다. 상당량의 수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석을 하는 친구가 선물한 것인데 초가집, 염소, 용, 하마, 성모마리아, 혹부리 영감, 물 없는 폭포 등 별명을 붙여 놓은 녀석들도 있다.
수석은 많은 돌 중에서 골라낸 작은 돌이지만 산수의 풍경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여러 형상을 닮아 기묘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회화적인 색체와 무늬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환상적인 미감을 발산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수석의 가치는 '자연의 모습이어야 하고, 손으로 들고 볼 수 있어야 하고, 작을수록 좋다'고 한다.
수석을 누리는 흥취는 이것뿐이 아니다. 산수경석(山水景石)은 산자수려한 자연의 온갖 풍경이 돌에 축소되어 나타나 있는 것으로 산형석·폭포석·호수석·단층석·단층석·평원석·바위형·잔설형 등으로 구분한다. 물형석(物形石)은 사람이나 새·짐승·탑·초가지붕 등을 닮은 돌로서 정감이 있거나 작을수록 묘미가 크다. 절경과 해학적인 옛 애환이 담겨 있는 듯하고 예술성이 있으면 금상첨화라 하겠다. 무늬석은 나무, 곤충, 사람, 새, 짐승, 꽃, 산과 수풀, 별과 달 등 온갖 모양이 새겨진 돌이며, 그 무늬는 색채를 가질수록 좋다. 또한 색채석은 빛깔의 화려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위주로 감상하는 돌이다. 색채가 천박해서는 안되며 기품과 고귀한 멋을 풍겨야 한다. 회화적이며 시정이 넘치는 우아한 빛깔을 띄면 더 품위를 높인다. 그런가 하면 추상석은 수석의 실상(實像)분야를 떠난 것이라 하겠다. 사물형상을 닮지 않았어도 무언가 강렬한 인상과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켜 충족감을 안겨주는 돌이 이에 속한다.
단순한 돌이 수석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수석은 석질(石質)이 좋아야 하고 중후감이 돋보이도록 새고도 짙어야 한다. 질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모양이다. 수석으로서 축경미와 자연미의 조건이 제대로 갖춰져야 좋은 수석이 된다. 또한 표정이 살아 있고 개성이 강한 모습이어야 한다. 고태(古態)를 풍기면 더욱 좋다. 기나긴 세월동안 만고풍상을 겪어온 내력이 돋보이는 정적한 고태의 멋이 살아 있을수록 좋으며 살갗이나 주름이 독특할수록 좋다.
미석(美石)은 특이한 색채와 무늬를 품고 있는 모암(母岩)을 깨뜨려 갈고 닦아서 숨어 있는 무의와 색채를 돋보이게 완상하는 돌로서, 수석의 장르에서 벗어난 인공석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수석을 즐기는 사람들도 미석은 아끼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다채로운 색채와 꽃무늬 등 갖가지 기이한 형상들이 신비롭게 돋보이기 때문이다. 돌속에 매화나 국화가 활짝 피어나는 것이 미석인데 주로 관상석으로 사용한다.
수석을 감상하다 보면 금강산의 만물상의 떠오른다. 바위와 공제선이 연출해내는 풍경은 너무나 신비해 그냥 한 폭의 풍경화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표현이다. 다정한 노부부의 뒷모습, 새끼를 업은 두꺼비 모습, 늑대에 쫓기는 토끼의 형상, 귀신의 형상이나 승천하는 용의 형상들이 수없이 나타나고 사라진다. 더욱 희한한 것은 그 위치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마치 신기루처럼 그 모습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아름다운 수석에 감탄을 하면서도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은 자연은 자연에 그대로 있을 때 더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거라는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을 친구 삼아 탐석을 한다'던 친구에게 '그건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들의 변명일 뿐이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수석은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지만 내가 소장한 수석이 설령 수석으로 가치가 없다고 하더라도 바라볼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모습, 그 자체가 즐겁고 친구의 따뜻한 마음도 같이 전해와서 더욱 좋다. 수석을 즐길 때마다 친구의 향기가 전해오는데 동백유로 단장을 해주니 더욱 반짝이며 나를 반긴다. 우리 주변에서도 자신의 향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많은 사회가 되어졌으면 한다.
/유윤섭(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