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쉼표
- 전주여자고등학교 1학년 4반 이예지
어느날인가 하루가 힘겨울 때면
쉼표 하나가 부족한 길 가운데에 서서
네가 그 쉼표가 되는건 어때?
잠시쉬다 허기질 시간엔
나뭇잎, 흙속에, 돌 틈에 감추어진
그 따뜻하고 즐거운 가르침들
한번쯤 맛보아도 괜찮아.
노을이 물감 흩부리고 있을 때
태양이 비치고 달이 눈뜬 그 그림을
네 발아래 중얼거리는 작은 풀과 앉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봐.
어디로 흘러들지 모르는 길에 몸을 맡겨
소리없이 찾아든 외로움을 느끼면
마음 한 귀퉁이에 치워놓았던 조그만 상자를 열어.
아마도 널 사랑한 따스함이 가득 담겨 있겠지.
어느날인가 하루가 지칠때면
푸른하늘 입안에 가득 머금고
크게 심호흡 한 번 해보는 거야.
그 순간만큼은 네가 쉼표니까.
길은 쉼표가 필요하니까.
할머니의 컴퓨터
- 영생고 2년 최병현
철없던 중학교 시절을 회상하면 나는 마음 한 구석이 쓰라려와 지금도 용서받지 못할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때 우리집에는 치매로 고생하시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의좋으신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6개월씩 번갈아가며 할머니를 모시게 되었다. 사실 나와 내 동생에게 할머니는 매우 낯선 분이셨다. 그런데 막상 할머니가 드디어 우리집으로 오시게 되자, 할머니에 대한 나와 내 동생의 생각은 점차 밝아져갔다. 아버지의 보살핌 덕이었는지 할머니의 건강도 날로 좋아지셔 어느덧 거동도 자유로워지셨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중3이 되었을 때, 우연히 친구집에 갔다가 본 컴퓨터는 나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컴퓨터를 했다. 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없었기에 나는 정말 컴퓨터를 하나 갖고 싶었다. 하지만 컴퓨터를 사자는 나의 말에 부모님은 냉담하셨다. 그러다 좋은 기회가 왔다. 아버지께서 모처럼 많은 보너스를 받으신 것이었다. 난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모님께 또 떼를 썼다.
"엄마, 나 컴퓨터 하나만 사주라, 응?"
"안돼, 우리 아들한테는 미안한데 이 돈으로 할머니 전용침대를 하나 사드려야 할 것 같아. 할머니가 너무 불편해하시거든"
"하나만 사주면 안돼?, 하나만 사주면 안되냐고!"
"다 할머니 때문이야, 할머니만 없었더라면...."
결국 난 내 마음에도 없던 말을 하게 되었고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로부터 많은 매를 맞았다. 그날 이후 아버지와 나는 본 듯 만 듯 했다. 이런 험한 분위기 속에서 드디어 일이 터졌다. 내가 학원에서 돌아왔을 때, 집안 가족 모두 할머니를 찾느라 난리가 났고, 여기 저기 찾아다니가다 슈퍼에서 뜻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 야!, 아까 어떤 할머니께서 오셔서 컴퓨터 팔지 않느냐고 물어보더라"
역시 그랬던 것이었다. 나의 그 말도 안 되는 투정을 컴퓨터가 무엇인지도 모르시는 할머니께서는 너무나 가슴 아프게 듣고 계셨던 것이었다. 난 의자에 앉아서 쉬고 계시던 할머니를 찾아냈다.
"할머니! 여기서 뭐하고 계세요!"
나의 울음 섞인 말에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시며 나에게 무엇인가를 내미셨다. 작은 컴퓨터 모형의 장난감이었다.
"할미가 미안하다. 아무리 찾아봐도 이것밖에는 안 팔더구나"
지금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시고, 내 방에는 진짜 컴퓨터와 함께 할머니의 장난감 컴퓨터가 놓여있다. 그 작은 컴퓨터를 보며 용서받을 수 없는 용서를 구해본다.
<글을 읽고>글을>
우리가 가는 길에 '쉼표'가 부족하다는 인식은 놀랍다. 또한 쉼표가 부족한 길에 '쉼표'가 '된다'는 생각도 놀랍다. 힘겨울 때 쉼표가 된다는 점은 더욱 놀랍다. 그 따뜻한 쉼표는 자연의 도처에 있는 것인데, 놀랍게도 어린 시인이 그것을 보아버렸다. 글쓴이에게 그랬듯이 이 '길의 쉼표'는 우리에게도 오랫동안 약이 되겠다.
병현이가 쓴 [할머니의 컴퓨터]는 참으로 아파하는 글이다. 컴퓨터를 갖고 싶은 욕심에 눈어두워 할머니의 아픔을 보지 못했으니, 할머니의 존재를 원망하고 부정했으니, 무의식적으로나마 사람의 가치를 물질(컴퓨터)과 비교하고 그보다 못하다 여겼으니, 그것을 고백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 병현이의 글은 우리를 아프게 하는 글이다. 우리에게는 컴퓨터만 못한 형제와 부모가 있고, 컴퓨터만 못한 이웃이 있고, 컴퓨터만 못한 세상이 있기 때문이다. 아, 또한 우리에겐 장난감 컴퓨터를 내밀던 글 속 할머니의 것과 같은 손길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오창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