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범신씨, 시인 김용택·안도현씨가 다양한 표정의 작품집을 잇따라 냈다. 소설가 박범신씨(58)는 연작소설집 '빈방'을, 안도현시인(44)은 '100일 동안 쓴 러브레터2'(태동출판사), 김용택시인(57)은 산문집 '정님이'(열림원)를 펴냈다. 여름을 맞은 독자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선물이다.
○ 박범신의 '빈방'
'빈방'은 올해 초 13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명지대 문예창작과)을 그만두고 강원도 원주 토지문학관에서 소설창작에만 전념했던 박씨의 첫 결실이다. 여섯 편의 연작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예술적 성취에 좌절하는 40대 화가와 패션디자이너의 야망을 갖고 있는 20대 여성의 연애담을 큰 틀로, 두 사람의 주위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단편들을 그렸다.
창조적인 생산력을 잃고 '불임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쓸쓸한 초상.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하기 위해 예순 네 살의 부호와 결혼하려는 혜인('빈 방'), 죽음에 임박해 은행통장과 토지문서를 찾아 움켜쥐는 용암사 원행스님('감자꽃 필 때'), 화가의 집에서 사산아를 몰래 낳은 어린 임산부('괜찮아, 정말 괜찮아'), 화가의 일상을 몰래 훔쳐보는 노파('별똥별'), 10년째 '필생의 야심작'을 쓰고 있는 늙은 여류작가('항아리야 항아리야') 등 허깨비 같은 욕망에 붙들린 인생들이다. 회갑을 두 해 남겨놓은 박씨지만 문학적 상상력은 여름날 녹음처럼 여전히 짙푸르다.
○ 김용택의 '정님이'
"유리창 밖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흐르는 강물을 따라 정님이가 책보를 가슴에 안고 걷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어른거린다.”
섬진강가 작은 학교(순창 덕치초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씨는 소설처럼 줄거리를 이룬 산문집을 펴냈다. 1996년 출간했던 동화 '옥이야 진메야'를 대폭 보강해 다시 쓴 이야기다. 시인은 어릴 적 구유 속같이 산이 둘러싸고 있는,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강물이 흘러가는 강변 마을에서 함께 자랐던 정님이와의 아련한 추억에 상상을 섞어 서정적인 문체로 풀어냈다.
'진달래꽃과 함께 왔다가 진달래꽃과 함께 떠난' 정님이. 시인은 그에 얽힌 애틋한 감정과 추억을 절기의 변화와 자연의 다채로움, 마을 잔치와 놀이 등 옛것과 맛나게 버무려 향수를 일으킨다. '섬진강 아이들'(열림원)에서 인연을 맺었던 우승우 화백의 그림도 글 못지 않게 여유 있다.
'눈 내리고 비가 오고 달이 뜨고 진달래 피면 네가 그립고 보고 싶을 거야. 너도 날 잊지마. 나도 널 잊지 않을 거야.'
○ 안도현의 '100일 동안 쓴 러브레터2'
"천천히 읽고, 입에 넣어 오물거리면서 읽고, 또 한번쯤은 입 바깥으로 소리내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그리움이 당신의 마음속에도 스며들 것입니다.”
지난해 12월에 펴낸 1권에 이은 두 번째 러브레터는 조선닷컴에 '안도현의 러브레터'로 연재했던 글을 모은 책이다. 시인이 밑줄 쳐가며 읽은 문장과 흥얼거리는 노래들을 보고 듣는 재미에 시인이 전하는 짤막하고 명쾌한 전언들을 맛보는 즐거움만으로도 독자들은 설레인다.
떨림, 유혹, 가족, 관계 등 4가지 테마로 구분한 이번 책에서도 고은·문태준·고정희·김명리·이문재·윤대녕·이성복·이병천·박성우 등 국내 작가들의 작품과 황진이의 시조 등 구전 한시와 시조, 월북작가 안성현이 작곡한 '부용산' 등 노래, 영화 '일 포스티노' 등 유명영화의 대사까지 시인의 더듬이에 포착된 구절이 시인 특유의 해석과 아포리즘을 붙인 짧은 단편들로 채워졌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알퐁스도데의 소설 '별'에서 "사랑이 이루어지기 직전의 떨림, 그때의 아름다움”을 떠올린 시인은 "설렘과 떨림으로 충만한 사랑, 당신도 지금 꿈꾸고 계시겠지요”하고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