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무렵 한 살 연상의 여인을 짝사랑했지요. 시를 쓰고 전달은 했는데……. 그 땐 연상의 여자가 연하의 남자랑 별로 연애를 안할 때였어요.”
어린 시절 그의 가슴을 저리게 했던 첫사랑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그 때 씌여진 시는 많은 연인들의 사랑을 대신하고 있다.
'즐거운 편지'의 황동규 시인(66·서울대 명예교수)이 지난 6일 1박2일 일정으로 전주로 소풍을 다녀갔다. 지난해 한옥마을을 둘러보고 1년만의 전주 나들이다.
"대학 1학년 때 혼자서 전주를 처음 왔어요. 한벽당에 가면 집 없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소주를 예닐곱병 사서 내꺼 한병 남겨놓고 그들에게 나눠주고 나갔다 오라고 했어요. 한벽당에 혼자 앉아서 많은 생각을 했지요. 지금은 전주가 커졌지만, 그 때는 전주가 내 팔 안으로 들어올 때였어요.”
문득 서울이 지겨워서 전주로 소풍왔다는 그는 덕진호 연꽃 자랑을 많이 했다는 소설가 최명희와의 인연도 들려줬다. 심사위원과 작가 지망생으로 처음 만난 안도현 시인과 제자 이종민 교수(전북대)가 있어 전주는 시인에게 더욱 특별했다.
유난히 여행시가 많은 황시인은 여행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여행지 풍물이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적다.
"시는 괴롭고 여행은 즐거운 건데, 시 쓰려고 여행합니까.” 시인은 여행의 감상들은 기억 창고 속에 넣어놨다가 나중에 꺼내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들 벗어던지고 나오는 판에 난 다시 들어갔으니, 순전히 내 허영심이에요. 열심히 하는 젊은 제자들을 보면 나도 기운이 나요. 내가 강의를 다시 나가지 않았으면 토마스만이나 까뮈를 다시 읽을 필요가 없지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옛날엔 완벽해보였는데 이젠 흠이 보이더군요.”
1주일에 한번 국민대 강의를 나가는 그는 어린 제자들 덕분에 시를 쓰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은퇴 전보다 더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문학은 자기와 두어번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요즘 여성문학의 흐름을 걱정했다. 필요없이 불륜을 강조하거나 남성과 여성 중 하나만을 강조하는 것을 우려하는 그는 문학은 인간을 앞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문학은 체험이 중요해요.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은 많은 체험을 공유하지요. 저의 경우 아버지와는 다르려고 노력했어요. 한번은 아버지도 나도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 새벽 4시쯤 목이 말라서 깨보니, 아버지는 그 시간에 글을 쓰고 계시더군요. 다르려고 했지만, 배워야 할 것은 많았지요.”
작고한 그의 부친은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이다.
최근 그가 펴낸 시집은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2003)'. 3년만에 발표한 시집은 예수와 불타의 대화로 '풍장'에서 보여줬던 시간과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자신의 시세계를 견지하고 있다. "쓸쓸함도 에너지”라는 시인의 말대로 우울한 내면적 풍경을 펼쳐놓기도 하고, 한가롭고 여유로운 어조를 경쾌하게 담기도 했다.
"이젠 시를 쓰면 한 3개월을 묵혀요. 계간지가 많아진 이유도 있지만, 3개월이면 서른번은 훑지요. 옛날처럼 탁탁 튕기는 감각이 떨어졌으니까 두고두고 발효시키는 겁니다.”
늘 '후배들이 내 시를 읽고 더이상 재미없다고 말할 때 그때가 시의 끝'이라고 말해온 그는 "가능한 책 많이 읽고 글 많이 써야겠다”고 말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무는 시를 써온 노시인은 일 하다 죽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하게 죽는 방법이라고 들려줬다.